뿌리와 역사/조선

황희정승의 전생부모

오늘의 쉼터 2011. 10. 30. 16:53

         

 

      옛날 평양성에 한 어린이가 있었는데, 하루는 부모와 함께 평양감사의 도임 행차를

    구경하다가 "나도 이 다음에 커서 평양감사가 될 테야" 하고 말했다.

    그 아이는 집에 돌아와서도 평양감사가 되겠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나중에 실망을 주지 않으려는 뜻에서 아이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우리는 평민이란다.

    상놈은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고, 해 보아도 소용이 없는 것이란다.

    그러니까 평양감사가 될 생각은 아예 하지 말고 아버지가 하는 대로 장사일이나 배워서

    먹고 살자."


      그날 하루 종일 아이는 밥을 먹지 않았고, 자면서도 분한 마음에 끙끙 안간힘을 썼다.

    이튿날도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이렇게 곡기를 끊고 지쳐 며칠을 몸져 눕더니

    그 길로 죽고 말았다
    나이 들어 얻은 자식을 이렇듯 허무하게 잃은 두 내외는 다시 아이를 낳을 생각은

    포기한 채, 서로 의지하며 쓸쓸히 여생을 보냈다.
    하지만 아이의 제사만은 꼬박 지내줬다


      한편 서울의 황씨 가문에 한 도련님이 태어났는데, 철나면서부터 꿈속에서 괴이한 일을

    겪곤 하였다.

    꿈에 어딘지 모르는 낯선 곳을 가곤 하는데, 꼭 같은 길을 한 해에 한 번씩 가는 것이다.

    가 보면 늘 같은 집인데, 무척 정다운 두 내외가 마중을 나와 집으로 모시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었다


      그 두 내외는 자기를 무척 귀여워해 주었는데, 몇 번 만나는 동안 친부모 같이 정답게

    느껴졌다.

    이런 꿈을 꾸는 날짜를 표시해 두고 보았더니 해마다 같은 날이었다
    "참 이상도 하다! 내가 누구 제사에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세월이 흘러 남달리 영특한 소년은 학업에 정진하여 마침내 과거에 급제하였고 벼슬도

    계속 올라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 날만 되면 으레 꿈속에서 먼길을 가고 어떤 노인 부부의 융숭한

    대접을 받고 하였다
      그는 벼슬이 올라 평안감사가 되었다.

    도임하여 첫 관무를 척결하고 안석에 기대어 쉬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오늘도 그 낯선 걸음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양에 있을 때와는 달리 매우 가깝게 느껴졌다.

    그 집 문전에 당도했다고 느꼈는데 아전이 부르는 소리에 그만 잠에서 깼다


    "나리, 밤바람이 차옵니다. 그만 안에 들어가셔서 편히 주무셔야죠."
    "그 보다 나하고 잠깐 갈 곳이 있느니라."
    "초행이신데다 밤도 깊은데 어디를 가시려 하십니까."
    "여러 말 말고 앞장을 서거라."
      감사는 하도 신기하여 아전과 함께 꿈에 본 그 집을 찾아나섰다.
    그런데 삼문을 돌아 나오니 꿈에 본 그대로였다.

    감사가 아전을 앞서 길을 찾아 한 골목에 다다르니,

    과연 문이 열려있고 등불이 비치는 집이 나왔다.

    꿈에 본 바로 그 집이었다.

    감사는 서슴치 않고 안마당으로 썩 들어섰다


    "거 뉘시오
    하며 방문을 열고 빠끔 내다보는 노인장의 얼굴 또한 꿈에 본 그대로 였다.

    문틈으로 제사상이 차려져 있는 것도 보였다


      감사는 신분을 밝히고 어인 제사인가 물으니,

    주인 부부는 눈물을 흘리며 지나간 일을 소상히 고하였다.
    감사도 어려서부터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고, 오늘 찾아온 경위를 설명하였다
      "전생 부모님을 이제사 찾아뵙습니다."

    하고 큰절을 올렸다
      "노인 부부도 우리 아이가 다시 태어나 기어코 소원을 풀고 말았구료."
    하면서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


      그 후 황희는 벼슬이 정승까지 올랐지만 전생의 부모를 잊지 않고
    이승 부모와 똑같이 섬겼다고 한다


    (이훈종. <한국의 전래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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