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주일 전부터 오늘까지 동화 같은 아침의 들에서 집으로 가져온 꽃들은 벌써 부드러운 압지의 넓은 천지 한 장 사이에 깊이 잠재워 두었소. 그러나 내가 오늘 그 꽃들을 들여다보니 그것은 나에게 소담스런 회상의 미소를 보내며, 모든 걸 그 때처럼 퍽 즐겁게 보이고자 하더군요…… 소중한 시간들 중의 한 시간이었소. 그러한 시간들은 촘촘히 들어찬 꽃들이 피어난 섬나라와 같아요 물결들은 아주 나직이 봄의 울타리 뒤에서 숨쉬며, 어떤 나룻배도 과거로부터 다가오지 않으며 아무도 더 이상 미래로 향하고자 하지 않소. 평범한 나날로의 귀한(貴翰)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이러한 시간의 섬에는 아무런 해도 끼칠 순 없소― 이 시간들은 다른 모든 시간과 무관하오. 어떤 훨씬 높은 존재 속에 살아온 듯이 말이오. 그같이 보다 높은 섬의 현존은 나에겐 너무나 소중한 사람의 미래인 듯싶소……. 나는 마음에 있고 싶소. 도시는 어쩌면 그다지도 시끄럽고 낯섭니까? 내면이 성숙하는 시간에 내 생활은 낯설은 어느 것도 손대지 못하오 언젠가 숱한 세월 속에 그대가 내게 어떤 존재인가를 그대는 완전히 이해할 것이오. 그것은 산 속의 샘이 목마른 자에게 존재할 때의 관계요. 목마른 자는 일단 샘물을 마셔 기분이 좋고 또 감사를 표시한 뒤엔, 새로운 태양을 향해 계속 나아가기 위해 샘물에 투명하게 비치는 자신을 보면서 샘물을 시원스레 마음껏 들이마시지 못한다오. 그는 숨어 있으면 자신의 노래가 들릴 만큼 하나의 움막을 짓고서 그의 눈들이 햇빛에 지칠 때까지 고요한 초원의 골짜기에 머무르고 있다오. 그리하여 그의 가슴은 태양 앞에 풍성함으로 넘치오. 나는 움막을 짓고 거기서 머무른다오. 맑은 샘이여! 나 얼마나 그대에게 감사히 여기는가. 어떠한 꽃도, 어떠한 하늘도, 그리고 어떠한 태양도 난 보려고 하지 않소. 그대 속에 있지 않는 한 말이오. 모든 것은 그대가 바라볼 때 훨씬 아름답고 퍽이나 동화답다오― 외롭게 늘어져 이끼 속에서 차가움을 느끼는 그대 주변의 꽃은 그대의 자비 속에 밝게 비치고 가벼이 움직이면서, 그대의 깊은 곳에서부터 다시 빛나는 하늘을 고운 머리로 어루만진다오. 수수하게 그대의 끝에서 먼지 가득히 떠도는 햇빛은 그대의 맑게 너울지는 영혼의 흐름 속에서 깨끗해지며 천 겹으로 된다오. 내 맑은 샘물, 그대를 통해 나는 세계를 보려오. 난 세계를 보는 게 아니라 늘 그대만을 보기 때문이오. 그대만을, 그대만을, 그대는 나의 축제일이오. 그래서 내가 꿈속에 그대에게 갈 때 난 늘 머리에 꽃을 꽂고 간다오. 나는 그대 머리에 꽃을 꽂고 싶소. 어떤 꽃일까? 어느 꽃도 그처럼 소박한 감동을 주지 못한다오. 어떤 5월에 나는 그 꽃을 가져와야 할까? 그러나 이제 나는 그대가 늘 머리에 화관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오. 또는 하나의 왕관을…….
난 그대를 달리 보아 오지 않았다오. 난 그대에게 기도해 줄 수 있기나 하는 듯이 그렇게만 그대를 보아 왔을 뿐이라오. 난 그대를 믿을 수 있기나 하는 듯이 그렇게만 그대의 말을 들어 왔을 뿐이라오. 나는 그대로 해서 고뇌하고 싶듯 그렇게만 그 대를 동경해 올뿐이라오. 내 그대 앞에 무릎 꿇을 수 있듯이 그렇게만 그대를 열망해 올뿐이라오.
난 그대라오, 지팡이가 방랑자에게 주어지듯, 다만 난 그대를 부축해 주지는 못한다오. 난 그대라오. 왕홀이 여왕에게 바쳐지듯. 다만 난 그대를 풍성하게 하지는 못한다오. 난 그대라오. 마지막 잔별이 밤에 바쳐지듯. 비록 밤이 그 별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하며 그의 여린 빛을 식별하지 못하더라도 말이오.
행복이 울리며 멀리서부터 꽃피어 내 고독을 감고 오른다. 그리하여 금세공사 같이 내 꿈들을 엮을 때 내 헐벗은 삶은 이른 아침 서리처럼 불안하고 아픔이 살을 도려낸다.
그에게 성스러운 시간을, 신성한 봄을 줄 것임에 틀림없으리……. 글 / 편 지 - 안드레아스 살로메에게 Rainer Maria rilke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르네상스 미술여행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