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메일 중에서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도종환

오늘의 쉼터 2011. 5. 24. 12:35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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