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식물

모과(Chaendmeles)의 전설

오늘의 쉼터 2011. 5. 15. 21:14

 

꽃말 : 괴짜,조숙


 

전해 오는 얘기로 옛날에 어떤 사람이미끈한 갈색 수피를 가진 나무를 보고 이렇게

예쁜 나무에선 어떤 열매가 맺힐까 궁금해 자기 집 마당에 옮겨 심었는데 가을에 열

린 못생긴 열매를 보고 기절할 듯 놀랐다고 한다.

홧김에 베어 내려다가 문득 향을 맡았는데 그 달콤한 향기에또 놀라고, 옳다구나

싶어 한입 깨물었다가 그 떫은 맛에 뛸듯이 놀랐다나.

모과를 논하자면 이렇듯 모양에, 향기에, 맛에 세 번 놀란다 는 말이 꼭 따라다닌다.

여하튼 불쌍하게도 모과는 그 우스꽝스러운 생김새 덕에 못생긴 것의 대명사로 일

컬어져 왔다.

그런데 사실 우스꽝스러운 것은 비단 열매 생김새만이 아니다.

열매가 열리는 모양은 또 얼마나 재미난지, 별로 굵지도 ?은 가지에 자루도 없이 딱

달라붙은 열매를 보고 있노라면 보내 이들이 다 갑갑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이 좋아 방향제로 쓰거나, 못 먹는 대신 차로 끓여 마시는 모과.

또한 모과 나무의 껍질이 얼마나 이쁜지 키워 본 사람은 잘 알것이다.

수피는 봄에 껍질을 벗는데 그  자리에 생긴 얼룩들이 아주 독특한 빗깔을 띤다.

 

모과의 전설

 

고려(高麗) 공민왕 2년(1353년)에 예의판서(禮義判書) 심동로(沈東老)가 지금의 갈천리에

왔을 때의 일이다.

그의 손자 심원복(沈原福)이 이 고을 삼척 현감(縣監)으로 있을 당시 이 모과나무를 심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모과나무를 심은 이후부터 심씨 가문은 번창하였다고 한다.

심동로의 본관은 삼척이다. 처음 이름은 한(漢), 호는 신재(信齋)라 했다.

문림랑군기주부(文林郞軍器主符) 심적충(沈迪沖)의 현손이며 검교(檢校)심수문(沈秀文)의 아들이다.

일찍 등과 하여 한림으로 있었다. 부모를 모시기 위해 지방 수령으로 나가기를 자원했다.

공민왕 1년(1352년) 통천군수에 임명되었다.

그는 내서사인지제교(內書舍人知製敎)에 올랐다.

그러나 벼슬에 뜻이 더 없었으므로 고향 삼척으로 돌아갈 생각만 간절했다.

드디어 벼슬을 버리고 왕에게 고향 삼척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했다.

왕은 그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을 높이 사서 {노인이 동쪽으로 간다}고 하여 [동로](東老)라는

이름을 내렸다.

이로부터 그의 이름은 심동로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22대 손인 심흥묵(沈興默)이 모과나무 옆에 변소를 짓게 되었다.

변소를 지은 후 어느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과나무 옆 변소에서

백발이 성성한 도인이 나오면서, "왜, 모과나무 옆에 변소를 지었느냐 !"고 심한 꾸중을 하였다.

그 후 며칠 뒤 심흥묵은 원인 모를 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심흥묵이 사망한후 한달 뒤에 두 아들이 사망을 하게 되고 이어서 또다시 보름 후에 어머니 마저

돌아가셨다.

이렇게 심씨 가문은 계속 초상을 치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심씨 가문이 기울기 시작하여 집안이 어렵게 되자

심재민은 모과나무 밑의 변소를 철거하였다.

철거 후 모과나무 옆에는 그 누구도 변소를 지을 수 없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정원中에서 "꽃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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