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경북문화재자료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74호 문경 김용사 대성암 금당

오늘의 쉼터 2011. 3. 2. 16:55

 

 

종 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73ㅅ4호 (문경시)

명 칭

문경 김용사 대성암 금당(聞慶 金龍寺 大成庵 金堂)

분 류

유물 / 불교건축/ 목조/ 불전

수량/면적

1동정면 7칸, 측면 9칸, 배면 7칸, 홑처마, 팔작, 맞배지붕,  면적 : 383.37㎡ (115.97평)

지정(등록)일

2010.06.10

소 재 지

경북 문경시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김용사

관리자(관리단체)

김용사

상 세 문 의 경상북도 문경시

 

일반설명

 

대성암은 과거 31본산 중 하나였던 김용사의 산내암자이다. 대성암의 창건과 연혁은 「청하전이건대성암기(靑霞殿移建大成菴記)」와 「상주운달산운봉사대성암중수기(尙州雲達山雲峯寺大成菴重修記)」에 간략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두 기록에 의하면 대성암은 창건주 영월대사(潁月大師)가 주축이 되어 가경(嘉慶) 기미(己未)겨울 즉, 조선 정조 23년(1799) 겨울부터 일을 추진하여 가경 5년 봄, 여름 즉 조선 정도 24년(1800) 봄, 여름에 걸쳐 시영(是英)등과 함께 김용사의 청하전(靑霞殿)을 이곳으로 이건하여 창건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6년 뒤인 순조6년(1806) 혜월대사(慧越大師)가 중수하면서 법당에 단청을 하고 불상을 개금하였으며 탱화를 조성했다. 고종 23년(1886)에 이르러 혜월대사의 제자인 혼성대사(混成大師)가 용호(龍湖)와 함께 중창을 했는데 2월에 시작하여 4월에 상량을 하고 8월에 준공을 하였으니 창건시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2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김용사 대성암의 주 건물은 원래 한 번 지어진 것이 아니라 시간적 차이를 가지고 점진적으로 완성되었다. 단일 건축규모로는 국내에서도 이만한 건물은 없을 것이라 추정된다. 현재 이 건물은 3구역으로 나뉘어 지며 침계루 쪽은 정면 4칸, 측면 3칸, 법당부분은 정면 3칸, 측면 2칸, 요사채로 쓰이는 부분은 정면 4칸, 측면 4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건물이 가지고 있는 결구특성을 지붕에서부터 살펴보면 두드러진 것은 대단히 큰 면적의 서로 다른 지붕 형식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연속된 지붕면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인데 법당 부분과 침계루 부분은 모두 팔작지붕이고 요사채는 맞배지붕이다. 그리고 지붕면적이 상당히 넓음에도 불구하고 부연이 없는 홑처마로 처리하였으며 물매가 완만하고 추녀의 곡이 비교적 경직되어 있다. 팔작지붕의 합각면에는 풍판이 모두 제거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추정해 보면 침계루와 법당 건물은 7량가로 판단되며 한쪽 단면이 완전히 노출된 요사채 건물은 7량가의 건물이다.
비록 대성암의 본사인 김용사에서 이건하기는 했지만 19세기 후반 중창 때 당시 시대적 변화에 따라 나타난 대방(大房) 사찰의 조영법을 반영하여 상당 부분을 고쳐 지은 흔치 않은 건물로 19세기 이후의 사찰건축 변천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특히 건물 1동의 면적이 397㎡에 달해 경북 북부지역에서 규모면에서는 가장 큰 건물로 보인다.

 

 

 

 

문경 김용사 대성암 금당

 

문경 김용사 대성암 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