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경북문화재자료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56호 영양 조검 축전단비 (英陽 趙儉 祝天壇碑)

오늘의 쉼터 2010. 12. 30. 17:28

 

 

 

종 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56호 
명 칭 영양 조검 축전단비 (英陽 趙儉 祝天壇碑)
분 류

유물/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2009.08.31
소 재 지 경북 영양군  영양읍 상원리 302-3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국유
상 세 문 의 경상북도 영양군 문화관광과 054-680-6063

 

일반설명

 

이 비는 조검(趙儉, 1570~1644)의 충국(忠國), 충신(忠君)사상을 기리기 위해 영남 북부지역 유림들이 뜻을 모아 1827년에 건립한 축천단비(祝天壇碑)이다. 조검(趙儉)은 7세에 부모를 모두 잃고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글을 배우자 항상 『소학』을 들고 다녔고, 옛사람의 좋은 말이나 착한 행실을 들으면 마음으로 기뻐했다. 효성이 지극하여 할머니가 병들어 강어회(江魚膾)를 먹고자 하였는데 때마침 겨울이라 돈을 가지고도 살 수가 없어 강을 따라 수십리를 울면서 올라갔는데 까치가 모여 우는 곳에서 잉어(鯉魚)를 얻어서 할머니의 병을 고치니 그 마을 이름을 고쳐서 비리동(飛鯉洞)이라 불렀다 한다. 선조 때 조모를 지성으로 봉양하여 나라로부터 복호(復戶)를 받은 효자이며, 임진왜란 때에는 곽재우(郭再祐) 의병진에 참여하여 공을 세워 그 공로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2등에 올랐다. 병자호란 때에는 노령으로 전투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집 뒤에 축천단(祝天壇)을 쌓아 충절을 지켰고, 후세에 이러한 충효를 높이 기려 축천단비(祝天壇碑)를 세웠다. 이 비는 약 500여 년간 영양에서 세거(世居)해 오고 있는 한양조씨(漢陽趙氏) 문중의 현조(顯祖)인 조검(趙儉)과 관련된 유적이며, 한양조씨(漢陽趙氏)가 조선 후기 영양뿐만 아니라 영남의 대표적인 재지사족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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