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문화재자료 제477호 (영양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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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태화당고택(太華堂古宅) |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
수량/면적 | 1526 |
지정(등록)일 | 2005.01.10 |
소 재 지 | 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371번지 |
시 대 | 조선시대 |
소유자(소유단체) | 정종철 |
관리자(관리단체) | 정종철 |
상 세 문 의 | 경상북도 영양군 문화관광과 054-680-6063 |
일반설명 태화당고택은 19세기 말엽에 건축된 고택이다. 이 집은 동래정씨의 집성촌인 연당리에 입향했던 정영방의 후손인 정익세의 고택이다. 살림채인 정침(正寢)과 대문채, 마당 좌측에 있는 고방채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양반가옥이다.
태화당고택은 기와를 얹은 토석담으로 둘러싸인 집이다. 그 안으로 대문채와 고방채, 살림채인 정침이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는 양반가옥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건물은 거기에다 약간의 변화를 추구하였는데, 바로 정침의 전면 좌측칸의 사랑마루와 우측칸의 새방 1칸을 좌,우로 1칸씩 돌출시켜 양날개집의 형상을 한 점이 돋보인다. 태화당고택은 살림채인 정침(正寢)과 마당 좌측에 있는 고방채 외에 대문채를 별도로 두고 있다. 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일자형 건물로, 가운데 칸에 대문을 두고 대문의 좌우로 온돌방을 두어 행랑사람들이 지낼 수 있도록 하였다.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의 좌측에 3칸 규모의 고방채를, 정면에 정면 6칸, 측면 5칸 반 규모의 ㅁ자형의 정침을 두었다. 우리나라의 정씨는 대부분 신라시대 6부촌 중 하나인 진지촌장(珍支村長) 지백호(智白虎)의 후손이다. 서기 32년(유리왕9) 봄에 지백호가 정씨로 성을 받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 정씨는 경주가 본관이었으나 뒤에 여러 개의 본관으로 갈라졌다. 이 과정에서 동래정씨도 경주정씨에서 분적(分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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