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설명
종 목
문화재자료 제94호 (창원시)
명 칭
위암장지연선생의묘(偉庵張志淵先生의墓)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봉토묘
수량/면적
묘 2기
지정(등록)일
1983.12.20
소 재 지
경남 창원시 현동 631-2
시 대
일제강점기
소유자(소유단체)
최임정
관리자(관리단체)
마산시
상 세 문 의
경상남도 창원시 문화관광과 055-212-2181
고종 32년(1895)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항일의병의 궐기를 호소하는 글을 지었고, 1896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의 간섭이 커지자 고종의 환궁을 요구하였다. 1898년 독립협회에서 활동하면서 남궁억·유근 등과 함께 황성신문을 창간하였고, 이상재·이승만 등과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민중계몽과 자립정신 고취에 힘썼다.
1905년 11월 17일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사설을 써서 일본의 국권침탈 조약을 폭로하고 국권회복을 위해 국민에게 호소하는 글을 써 투옥되었다. 1906년 출옥한 후 대한자강회를 조직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본격적으로 애국계몽운동을 시작하였다.
1907년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신문과 잡지에 논설을 실어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시켰으며 전국민이 합심하여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그 뒤 대한자강회가 강제해산되자 대한협회에서 활동하다가 1908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하여 해조신문을 집필하였다. 계속해서 중국 각지를 유람하다 귀국 후 진주의 경남일보 주필이 되어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언론구국운동을 계속하다가 폐간되어 활동 무대를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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