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경북기념물

시도기념물 제81호 (영천시) 영천충효재(永川忠孝齋)

오늘의 쉼터 2010. 10. 20. 16:06

 

종 목 시도기념물  제81호 (영천시)
명 칭 영천충효재(永川忠孝齋)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사우
수량/면적 1,189㎡
지정(등록)일 1989.05.29
소 재 지 경북 영천시  자양면 충효리 626외 2필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정호용외2명
관리자(관리단체) 정호용
상 세 문 의 경상북도 영천시 도시주택과 054-330-6354
 
 일반설명
 
조선 후기 의병대장인 정환직(1843∼1907)과 그의 큰아들인 정용기(1862∼1907)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묘 근처에 세운 재실이다.

정환직은 고종 25년(1888) 의금부 의금도사를 지냈으며 광무 3년(1899) 시찰사, 도찰사겸 도포사를 역임하고 그 뒤 중추원 의관을 지냈다. 그의 아들 용기는 혜민원 총무를 거쳐 민영환 등과 함께 독립회와 만민회에 참여하고 보안회 국채보상운동에 회장으로서 적극 참여하였다. 그러나 광무 9년(1905) 불법적인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정환직은 고종의 밀지를 받고 관직을 사직한 뒤, 그의 아들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영해, 의흥, 청송, 영양 등지에서 왜군과 전투를 벌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뒤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는데 회유에도 끝까지 반일의 뜻을 굽히지 않다가 죽음을 당했다. 정용기는 영천수비대와 전투를 벌이다가 아버지와 같은 해 전사하였으며,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에 추서되었다.

이들 두 부자의 애국정신과 효행을 기리기 위해 마을 이름을 충효동으로 바꾸고 1923년 이 재실을 세웠고, 1987년 새로 보수·정화하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으며 정원에는 유허비가 있다.
 
 

영천충효재

 


영천충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