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역사/참고첩

김만덕묘비 비문

오늘의 쉼터 2010. 10. 14. 21:03

 

< 김만덕묘비 비문 >

 

 

○ 비문 명칭 : 행수내의녀김만덕지묘

○ 비문 작성 경위 : 1812년(순조 12년) 10월 22일

                           김만덕이 죽고 나서 한 달이 지난 다음인 11월 21일에 세워짐

 

○ 비문 내용

 

김만덕의 본은 김해김씨요 곧 탐라의 좋은 집안의 딸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고독하게 가난과 고생으로 자랐다.

그러나 살결이 곱고 아름다우므로 교방(敎坊)에 의탁한 바 되었으나 의복을 줄이고

먹을 것을 먹지 아니하여 재산이 대단히 커졌다.

 

정조 을미년에는 제주도민이 크게 굶주렸는데 능히 재산을 기우려 곡식을 육지에서 운반하여다가

심히 많은 백성의 목숨을 살렸다.

 

목사가 이 착한 사실을 아뢰니 임금께서 무엇이 소원이냐고 물으셨는데 대답하기를

「화려한 서울과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 소원입니다」하였으므로 특명으로

고을과 고을을 이어가며 돌아보게 하고, 내의원 의녀로 삼아 여러 차례 은총을 내리시고

역마를 내려주어 일만이천봉을 두루 유람하고 급기야 서울로 돌아오니 이로 인하여

공경대부 모두가 글과 전기를 써주었으니 비록 옛적에 착하고 아리따운 여자라 하더라도

무릇 방불케하였고 눈은 쌍겹눈으로 환하고 맑았다.

 다만 천도가 무심하여 아이가 없는 게 애석하다.

 

그러나 양손 시채(時采)가 동기간에서 출계하여 유지를 잘 지키고 영구히 향화하니

또한 섭섭하지 않게 보답하고 있다.

 

원능(元陵 : 영조의 능으로 영조를 말함) 기미년(영조 15년)에 낳고

지금 임금(순조 12년) 10월 22일에 죽었으므로 다음달에 고오니모루(竝園旨)에 장사하니

갑좌(甲坐: 약간 남쪽으로 기울어진 서쪽)의 무덤이다.

임금이 즉위하신지 12년 11월 21일에 비를 세우다.

 

○ 원문

 

金萬德 本金海 卽耽羅良家女也 幼而失恃 零丁貧苦長

而靡曼托跡敎坊 縮衣損食 貲産滋大 歲在 正宗朝乙卯

島人大飢 能傾財運穀 活命甚衆 牧伯賢之以聞

上問何所欲 對曰 願見京華金剛之勝

而巳特命縣次續食 充內醫女寵頒便蕃

因舖馬便覽萬二千峯 及其還 卿大夫 皆贐章立傳

雖古賢媛 盖未嘗 七旬顔髮 彷髴仙釋 重瞳炯澈 但天道無心

惜乎無兒 然養孫時采 出自同氣 克遵遺志 永香火亦復奚憾

生于元陵己未 終于當宁壬申 十月二二日 以翌月窆于並園旨

甲坐之原 上之卽位十二年 十一月二十一日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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