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경남기념물

시도기념물 제35호 (의령군) 칠정려(七旌閭)

오늘의 쉼터 2010. 10. 8. 21:58

 

종 목 시도기념물  제35호 (의령군)
명 칭 칠정려(七旌閭)
분 류 유적건조물 / / / 
수량/면적 6동
지정(등록)일 1977.12.28
소 재 지 경남 의령군  의령읍 동리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진양강씨문중
관리자(관리단체) 진양강씨문중
상 세 문 의 경상남도 의령군 문화체육과 055-570-2223
 
일반설명
 
이 건물군은 조선시대의 진양 강씨 문중이 낳은 일곱분의 충효열 삼강(三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여각으로서 일명 삼강문으로도 불리며 6동의 건물이 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정려는 연산군 원년(1495)에 태어나 천출의 효도로 정려된 모암공 강우의 정려이니 1774년에 건립된 맞배지붕의 목조와가이다. 그는 충순위 세응(世應)의 아들로 어머니는 전주 이씨 태종의 손 의천군(義泉君)의 따님이다. 그는 평소에 효성이 지극하여 모친의 병환을 지성으로 간병하였고, 상을 당하여 3년상을 마치는 대상일에 급기야 본인도 생을 마쳤다. 이에 영조 20년(1744) 정려를 내리고 헌종 14년(1847)에 충효사에 배향하였다.
모암공의 정려와 나란히 서있는 것은 그의 아우 매곡공(梅谷公) 서(瑞)의 정려이다. 그도 또한 뛰어난 효행으로 중종 39년(1544) 정려되었으니 형제가 함께 효행의 귀감이 된 것이다. 충열공 강수남은 강서의 아들으로 명종 7년(1552)에 태어나 임진왜란 중 병조정랑으로 삭녕싸움에서 순절하였기에 그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선조 25년(1592) 왕명으로 정려되었다.
참의공 강기룡장군은 임진왜란시 17의병장 가운데 한 분이었던 강언룡의 동생으로 그 휘하에서 전공을 세우다가 진주성 함락과 더불어 순절하였다.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철종 12년(1861) 이조참의를 추증하고 정려를 내렸다.
열부 김해 허씨는 강시주의 처이니 시주형제가 부친을 살해한 불한당을 쫓다가 오히려 살인죄를 쓰고 감영(監營)에 갇히게 되자 자신의 죽음으로 그 결백을 알렸다. 이에 그 열행을 만고에 기리고자 나라에서 고종 19년(1882)에 정려를 내렸다.
수재공 강재중과 그의 처 함안 조씨 또한 그 효행이 지극하여 병환중의 부모님을 극진히 간병하였으며 이로써 많은 기적과 같은 일을 보게 되었다. 이와 같은 수재공 부부의 효행이 널리 알려져 헌종 11년(1845) 나라에서 쌍효의 정려를 모셨다.
이상과 같은 일곱분 6동의 정려는 각기 그 건립연대도 다르고 다른 장소에 있었던 것인데 언제부터 이곳에 전환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칠정려

 


칠정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