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충남기념물

충청남도 기념물 제33호 부여 왕흥사지

오늘의 쉼터 2010. 10. 7. 21:05

 

종 목 충청남도 기념물  제33호 (부여군)
명 칭 왕흥사지 (王興寺址)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사찰
수량/면적 46,557㎡
지정(등록)일 1982.08.03~2001.02.05
소 재 지 충남 부여군 규암면 규암면 신리 48외 7필
시 대 백제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부여군
상 세 문 의 충청남도 부여군 문화관광과 041-830-2241
 
일반설명
 
이곳은 백제(百濟)의 국찰(國刹) 왕흥사(王興寺)가 있던 곳이다. 왕흥사(王興寺)는 백제 법왕(法王) 2년(600)에 창건된 사찰(寺刹)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그 절이 물가에 있으며 단청(丹靑)이나 꾸밈이 크고 화려하며, 왕이 늘 배를 타고 절에 가서 향불을 올렸다"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절이 산기슭에 있고 물에 임하였으며 꽃과 나무가 고와 사계절 아룸다움을 갖추었다. 왕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절에 와서 그 형상이 빼어남을 구경하였다"고 하였다. 이 폐사지(廢寺址)가 들어선 부락의 동명(洞名)이 왕언이이며, 그 입지조건이 옛 문헌기록과 일치하고 있고 1934년에 발견된 '왕흥(王興)'이라는 명문(銘文)기와 등으로 이곳이 바로 백제의 왕흥사지임을 알 수 있다. 사역(寺域)은 상·하로 단을 이루었으며 윗단 건물지에는 높이 1.5m 가량의 석축이 10m 가량 남아 있으며, 강당지(講堂址)로 추정되는 맨 위쪽 건물지에도 방형(方形)의 주춧돌과 기단석렬(基壇石列) 일부가 노출되어 있다. 금당지(金堂址)와 목탑지(木塔址)로 보이는 넓은 대지에는 민가가 있다. 이 민가 뜰과 뒤쪽에도 당시의 주춧돌이 놓여 있다. 한편 동리(洞里) 전면(前面)의 농경지(農耕地) 중에 '쇠대백이'로 불리는 논이 있는데 이것은 쇠로 만든 철당간(鐵幢竿) 등 유물이 출토된다. 부여에 분포한 많은 백제 사원 중에서 가장 기록이 풍부하며 그 위치가 정확히 밝혀진 유일한 유적으로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사적 제427호로 승격됨에 따라 2001년2월5일 해지.

 

 

왕흥사지

 

왕흥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