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광주기념물

시도기념물 제7호 (광주남구) 포충사(褒忠祠)

오늘의 쉼터 2010. 9. 27. 17:58

 

종 목 시도기념물  제7호 (남구)
명 칭 포충사(褒忠祠)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사우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1974.05.22
소 재 지 광주 남구  원산동 947-1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포충사관리사무소
상 세 문 의 광주광역시 남구 문화사업추진단 062-650-7225
 
일반설명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고경명(1533∼1592)과 그의 장남 고종후(1554∼1593)·둘째 고인후(1561∼1592) 등 3부자와 유팽로(1554∼1592)·안영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고경명은 임진왜란 때 60세의 고령으로 의병 7천명을 이끌고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금산전투(1592)에서 전사하였다. 그를 따라 의병에 참여하여 왜군과 맞서 싸웠던 둘째 아들인 고인후와 유팽로·안영이 모두 금산 전투에서 고경명과 함께 전사하였고 큰아들인 고종후만 겨우 살았다. 아버지와 아우를 잃은 그는 다시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을 지키기 위해 싸웠으나 성이 함락되자 김천일과 함께 남강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선종 31년(1603) 광주 제봉산 아래 5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당을 마련하였고 나라에서 ‘포충사’라는 이름을 내렸다.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훼손되지 않은 전라도 지방의 2개 서원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일제시대 때 폐사되었다가 유림들이 다시 세웠고 그 뒤 1978년 정부에서 벌인 정화작업으로 예전에 있었던 사당 건물은 보수되고 새로운 사당을 세웠다. 사당 앞에는 동재와 서재, 강당과 그의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장서각이 있다.

 

 

 


포충사

 


포충사내부

 


포충사

 


포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