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고미술

겸재 인물 산수화

오늘의 쉼터 2010. 9. 6. 17:37

 


정선(鄭敾/1676∼1759)


정선은 본관 광주(光州). 자 원백(元伯). 호 겸재(謙齋)·난곡(蘭谷)으로 숙종 2년(1676)년 1월 3일 아버지 時翊(1638-1689)과 어머니 밀양 박씨(1644-1735)의 사이 2남 1녀 중 장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정선의 5대조인 應奎는 무과에 급제하여 水軍節制使, 慶源府使를 지냈으며, 고조부인 演은 음서로 同知中樞府事를 거쳐 戶曹判書에, 증조인 昌門은 司僕寺正에, 조부인 綸이 좌승지에 올랐고, 아버지 時翊은 戶曹參判에 추증되었으나 나이 40에 가까워 정선을 낳아 정선의 입신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정선은 사대부 가정에서 성장하였으나 어려서부터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가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이웃에 살던 고관 金昌集의 도움으로 그림에 대한 재능을 살려 궁중의 繪事를 맡으면서 贈戶曹參判이었던 아버지나 贈左承旨였던 할아버지를 빌어 음서로 종6품인 衛率에 초사되었다. 1733년에 淸河縣監을 지내는데 이때 영남 일대 58곳의 명승고적을 담은 화첩인 嶠南名勝帖이 그려졌을 것이며, 1734년에는 金剛全圖를 그렸다. 1740년에 양천현령으로 부임하여 京外名勝帖을 제작하였고 이때 가장 왕성한 회화활동을 하였다. 1754년(79세)에는 司도寺(궁중의 미곡과 장을 공급하는 기관)의 종4품 僉正이 되었다. 이때 賤技로 이름을 얻어 승급함은 부당하다는 간언을 받기도 하나 영조의 배려로 다음해인 1755년에는 정3품 僉知中樞府事로 81세 되던 1756년에는 종2품인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로 승직되었다. 그리고 1759년(영조 35년) 3월에 84세의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산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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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는 본관은 김해이며, 자를 사능(士能), 호를 단원(檀園), 단구(檀丘),

서호(西湖)라 했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원 화가이다. 18세기 영·정조시대에

학문과 예술의 향기로 가득 차 있던 안산에서 태었났다.

 

김홍도는 7∼8 세부터 20여세까지 이곳 안산에서 표암 강세황 선생으로부터 그림과

글 수업을 받았으며 그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그림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여 주었던 단원 김홍도는 후에 어진 화가로 대성하여 그 명성을

전국에 떨쳤다. 산수화, 도석인물화, 풍속화, 화조화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당대부터 이미 크게 이름을 떨쳤다.

 

29세인 1773년에는 영조와 왕세자의 초상을 그렸고, 그로 인하여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쳐 충청도 연풍 현감까지 지냈다.

 

그는 외모가 수려하고 풍채가 좋았으며 또한 마음이 넓고 성격이 활달해서 마치

신선과 같았다고 한다.

그는 산수화, 도석인물화, 풍속화, 화조화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당대부터 이미 크게 이름을 떨쳤다.

 

1788년 스승 김응환이 왕명으로 일본 지도를 그리러 갈 때 그를 따라가 김응환이

부산에서 죽자 홀로 쓰시마에 가서 일본지도를 모사해 돌아왔다.

1796년 왕명으로 용주사의 <부모은중경>삽화를 그렸으며, 97년 나라에서 간행한

<오륜행실도(오륜행실도)>의 삽화를 그렸다.

 

한국적 정취가 짙게 풍기는 그의 작품은 강한 먹선의 강조와 부드럽고도 조용한

담채의 밝고 투명한 효과, 탁월한 공간구성으로 대단히 높은 경지의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그의 산수도에서는 실경을 소재로 단원법이라 부를 만큼 세련되고 개성이 강한

독창적인 화풍을 이룩하였다. 산수뿐 아니라 도석 인물화에서도 특이한 경지를

개척하였다. 굵고 힘찬 옷 주름과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 그리고 티없이 천진한

얼굴 모습 등도 특징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역시 풍속화이다.

풍속화는 서민사회의 생활정서와 농(농) 상(상) 공(공) 등의 생활정서를 주제로

하여 그들의 생활모습을 원형구도를 써서 익살스럽고 구수한 필치로 그린, 일종의

사회풍자를 곁들인 작품이다.

그의 화풍은 아들인 김양기를 비롯, 조선 후기와 말기의 화가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모두 25점으로 이루어진 《단원풍속화첩》에는 당시 사람들의 삶이나 사회상이

한국적 해학과 정취가 곁들여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담고자 하는 핵심을 집약하려는 듯 그의 풍속화는 대체로 배경을 생략하고, 꽉 짜인

원형 구도를 이루며 간략한 선의 묘미가 잘 나타나 있다. 주제는 서민들의 소박한

일상 생활을 꾸밈없이 표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제에 어울리게 거친 듯하면서도

투박한 선을 쓰고 있다.

 

김홍도는 풍속화를 잘 그리기로 일반에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남종화, 평생도,

신선도, 풍속화, 진경산수, 초상화 등 전반에 걸쳐 탁월한 기량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산수화는 그의 예술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김홍도의 산수화 배경은 당대에 유행하고 있던 남종화풍을 바탕으로 우리 나라

산천의 아름다운 산수풍속의 서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그가 44세 되던 해에 정조의 명을 받고 복헌 김웅황과 함께 금강산에 있는 4개 군의

풍경을 그린 것을 계기로 하여 그의 독자적인 산수화를 확립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 김홍도가 실제 경관을 사생(寫生)한 것이 금강산 사군첩인데 여기에서 우리나라

화강암 돌산과 소나무가 있는 토산을 표현하는 적절한 묘사법을 터득하여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는 모습을 경쾌하게 묘사한 수지법이 완성되었다.

 

그의 산수화는 여백을 적절히 남기면서 대상을 압축하는 밀도 있는 구도법과 형상을

집약해서 표현해 내는 묘사력, 그리고 운치 있는 운염법 등으로 김홍도의 산수화는

진경산수와 남종문인화가 하나로 만나는 높은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가 이룩한 속화 양식은 같은 시대의 긍재 김득신, 혜원 신윤복에게도 크게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후배들이 그대로 추종하여 그의 아들인 긍원 김양기, 임당 백은배,

혜산 유숙, 시산 유운홍 등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정승 벼슬자리하고도 바꾸지 않는다는 삼공불환도와

한국적인 해학과 정취가 가득 찬 25면으로 구성된 풍속화점, 말을 타고 가다가 꾀꼬리

소리에 멈추었다는 마상청앵도(馬上廳鶯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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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만조(江亭晩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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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고사(江津孤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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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폭도(觀瀑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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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전도(金鋼全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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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백도(老栢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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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대설(老松戴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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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추월(洞庭秋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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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천부신(氷遷負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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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노송도(社稷老松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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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청람(山市晴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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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야우(瀟湘夜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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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악후월(小岳候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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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초당도(廬山草堂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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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사모종(烟寺某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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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명낭박(滄溟浪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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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계도(淸風溪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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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일도(涬洲一棹)







 



청풍계도











동리채국도

 

겸재 인물 산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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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려방매(騫驢訪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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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관폭(高士觀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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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상매(孤山賞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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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려심매(騎驢尋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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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여가(讀書餘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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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송관산(撫松觀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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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탈사(寺門脫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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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평기려(雪坪騎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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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복호(松岩伏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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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고사도(松下高士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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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문동자도(松下問童子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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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관폭도(樹下觀瀑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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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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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초문답(漁樵問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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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송정금(雲松停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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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곡유거(仁谷幽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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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천고암(林川鼓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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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재제시(惕齋題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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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성도(聚星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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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문암(通川門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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