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고미술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

오늘의 쉼터 2010. 9. 6. 17:16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 1745(영조 21)~?

김홍도는 본관은 김해이며, 자를 사능(士能), 호를 단원(檀園), 단구(檀丘), 서호(西湖)라 했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원 화가이다. 18세기 영·정조시대에 학문과 예술의 향기로 가득 차 있던 안산에서 태었났다.

 

김홍도는 7∼8 세부터 20여세까지 이곳 안산에서 표암 강세황 선생으로부터 그림과 글 수업을 받았으며

그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그림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여 주었던 단원 김홍도는 후에 어진 화가로 대성하여 그 명성을 전국에 떨쳤다. 산수화, 도석인물화, 풍속화, 화조화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당대부터 이미 크게 이름을 떨쳤다. 

29세인 1773년에는 영조와 왕세자의 초상을 그렸고, 그로 인하여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쳐 충청도 연풍 현감까지 지냈다.

 그는 외모가 수려하고 풍채가 좋았으며 또한 마음이 넓고 성격이 활달해서 마치 신선과 같았다고 한다.

그는 산수화, 도석인물화, 풍속화, 화조화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당대부터 이미 크게 이름을 떨쳤다. 

1788년 스승 김응환이 왕명으로 일본 지도를 그리러 갈 때 그를 따라가 김응환이 부산에서 죽자 홀로 쓰시마에 가서 일본지도를 모사해 돌아왔다.

1796년 왕명으로 용주사의 <부모은중경>삽화를 그렸으며, 97년 나라에서 간행한<오륜행실도(오륜행실도)>의 삽화를 그렸다.

한국적 정취가 짙게 풍기는 그의 작품은 강한 먹선의 강조와 부드럽고도 조용한 담채의 밝고 투명한 효과, 탁월한 공간구성으로 대단히 높은 경지의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그의 산수도에서는 실경을 소재로 단원법이라 부를 만큼 세련되고 개성이 강한 독창적인 화풍을 이룩하였다. 산수뿐 아니라 도석 인물화에서도 특이한 경지를 개척하였다. 굵고 힘찬 옷 주름과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 그리고 티없이 천진한 얼굴 모습 등도 특징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역시 풍속화이다.

풍속화는 서민사회의 생활정서와 농(농) 상(상) 공(공) 등의 생활정서를 주제로 하여 그들의 생활모습을 원형구도를 써서 익살스럽고 구수한 필치로 그린, 일종의 사회풍자를 곁들인 작품이다.

그의 화풍은 아들인 김양기를 비롯, 조선 후기와 말기의 화가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모두 25점으로 이루어진 《단원풍속화첩》에는 당시 사람들의 삶이나 사회상이 한국적 해학과 정취가 곁들여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담고자 하는 핵심을 집약하려는 듯 그의 풍속화는 대체로 배경을 생략하고, 꽉 짜인 원형 구도를 이루며 간략한 선의 묘미가 잘 나타나 있다. 주제는 서민들의 소박한 일상 생활을 꾸밈없이 표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제에 어울리게 거친 듯하면서도 투박한 선을 쓰고 있다. 

김홍도는 풍속화를 잘 그리기로 일반에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남종화, 평생도, 신선도, 풍속화, 진경산수, 초상화 등 전반에 걸쳐 탁월한 기량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산수화는 그의 예술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김홍도의 산수화 배경은 당대에 유행하고 있던 남종화풍을 바탕으로 우리 나라 산천의 아름다운 산수풍속의 서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그가 44세 되던 해에 정조의 명을 받고 복헌 김웅황과 함께 금강산에 있는 4개 군의 풍경을 그린 것을 계기로 하여 그의 독자적인 산수화를 확립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 김홍도가 실제 경관을 사생(寫生)한 것이 금강산 사군첩인데 여기에서 우리나라 화강암 돌산과 소나무가 있는 토산을 표현하는 적절한 묘사법을 터득하여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는 모습을 경쾌하게 묘사한 수지법이 완성되었다.

그의 산수화는 여백을 적절히 남기면서 대상을 압축하는 밀도 있는 구도법과 형상을 집약해서 표현해 내는 묘사력, 그리고 운치 있는 운염법 등으로 김홍도의 산수화는 진경산수와 남종문인화가 하나로 만나는 높은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가 이룩한 속화 양식은 같은 시대의 긍재 김득신, 혜원 신윤복에게도 크게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후배들이 그대로 추종하여 그의 아들인 긍원 김양기, 임당 백은배, 혜산 유숙, 시산 유운홍 등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정승 벼슬자리하고도 바꾸지 않는다는 삼공불환도와 한국적인 해학과 정취가 가득 찬 25면으로 구성된 풍속화점, 말을 타고 가다가 꾀꼬리 소리에 멈추었다는 마상청앵도(馬上廳鶯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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