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어서 재기할 수 없다고 낙담하지 말라!
나는 미천한 집안에 태어나
아버지가 일찍 죽는 바람에 학업도 못마치고
전장(錢庄)에 들어가 똥오줌을 치우고 마루를 닦으며
잔신부름으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빈손으로 사업을 일으켰고
다시 빈털隙隔?되는 과정을 겪고 또 겪었지만
내가 살아있는 한 아무리 빈손이라도
언제든지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한푼도 가진게 없는 가운데도 스스로의 재기를 믿었고
내게 없는 것을 메꾸어주는 인재를 대함에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큰 상인이 되는데 돈 보다는 사람이 더욱 소중함을
일찍이 깨달았던 나는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장사의 신
"상성(商聖)"이 되었다.
<청대말 거상 胡雪巖>
만년 2인자라고 보스자리에 대한 욕심으로
자신의 직분을 망각하지 말라!
나는 1935년 준의회의에서 모택동을 모시고
만리장정을 따라나선 때부터죽는 그날까지 41년동안
2인자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공산당초기 탑리더의 코스를 밟던
내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 모택동을 중국혁명의 지도자로
추천하고 스스로를 낮췄던 것은 인민의 마음을 움직이
호소력이 그에게 있음을 알았기때문이었다.
총리시절 행정보고를 함에 모주석의 침상옆에
꿇어 앉아야했고 방광암수술을 받고싶어도 毛의 허락이
떨어지지않아 수술을 2년간이나 미루어야했다.
방광암으로 죽어가는 초읽기의 시간속에서도
미일과의 수교, 문화대혁명의 폐허속에 놓인 국가경제재건,
등소평을 재신임하는 권력의 재편성을 위해 촌음을 다투었다.
나는 사망하는 순간에도
"다 죽어가는 나따위는 돌보지말고 다른 아픈 동지들을
돌보시오"라는 유언을 남기며 인민의 마음속에서
영원한 1인자, 인민의 벗으로 다시 태어났다.
<중화인민공화국 총리 周恩來>
잘나가다 넘어지고 재기했다 다시 쓰러진다고
괴로워하지 말라!
나는 문화대혁명때 반모주자파로 몰려 홍위병으로 부터
공개비판을 당했고, 잠시 일어났지만 하방당하여
강서성의 한 공장에서 4년간을 육체노동자로
버텨야했다.
주은래 총리의 도움으로 복권되어 국무원 부총리로 재기했다가
4인방의 농간에 또 다시 실각하고 가택연금까지 당해야했지만
모택동사후 정국수습용으로 재기용된 후
화국봉과의 5년 권력투쟁끝에 최고실권을 장악했다.
나는 세번 쓰러지고 네번 일어난 역전의 용사로서
마지막 정치적 위기였던 천안문사태의 시련을 견뎌내고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 부도웅 개혁개방의
총설계사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鄧小平>
무엇이 성공한 삶인가요?
내가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성공한 삶도
다를 수 있지요
아무리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그 삶을 가지고도 행복하지 않았다면
그는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행복한 삶과 성공한 삶은 다르거든요.-이룻-
퐁당퐁당 하늘여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