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여기저기

천연의 사랑....연리지, 비익조, 비목어

오늘의 쉼터 2010. 7. 29. 20:20

 

천연의 사랑....연리지,  비익조,  비목어

천년의 사랑 連理枝(연리지)

중국의 남북조시대에 송나라(420~479) 범영이 쓴 역사책 「후한서」 채옹전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후한 말의 대학자인 채옹이란 사람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를 하다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3년 동안 묘를 지켰다. 얼마 후 채옹의 방 앞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마주보면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차츰 두 나무는 서로의 가지가 맞붙어 마침내 이어져 연리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그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몸이 된 것이라고 칭송했다. 이때부터 연리지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을 나타내는 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세월이 한참 지나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한 시에 인용되면서부터 연리지는 남녀 사이의 변함없는 사랑의 뜻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한다.

서기 736년, 무혜왕비를 잃고 방황하던 56세의 현종은, 남도 아닌 자신의 열여덟번째 아들 수왕 이모(李瑁)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제왕이 하는 일에는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각한 왕조시대의 사람들이었지만, 훗날 양귀비가 된 스물두 살짜리 며느리와의 사랑 놀음은 당시로서도 충격적인 스캔들이 아닐 수 없었다. 비극으로 끝난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양귀비가 죽고 50여 년이 지난 서기 806년, 유명한 시인 백거이(백낙천)에 의하여 ‘장한가(長恨歌)’라는 대서사시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당태종이 양귀비의 무릎을 베고 누워 하늘의 별을 쳐다보면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백거이가 이렇게 노래하였다.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7월 7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和語時(야반무인화어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맹세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선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선   연리지가 되자고 간곡히하신 말씀...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하늘과 땅은 차라리 끝간데가 있을지라도,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님을 사모하는 이 마음의 한은 끝이 없으리이다..... 


 중국의 전설에 비익조는 눈도 날개도 한쪽만 있는 새다. 암수가 합치지 않으면 날 수 없는 신화 속의 새이다. 연리지는 물론 두 나무의 가지가 합쳐 하나가 되어야 만들어지는 나무이다. 이후 수많은 중국인들의 사랑 이야기에 연리지는 단골손님이 된다.

우리 역사 속에도 일찌감치 연리가 등장한다. 남녀의 사랑에 한정시키지 않고 상서로운 조짐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때로는 선비들의 우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서민들 사이에선 이 나무에 빌면 부부 사이가 좋아진다는 믿음이 유행했다. 또 연리지에 올라가 기도를 하면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속 연인이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바로 그 연인에게 상사병이 옮겨가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내물왕 7년(362) 4월에 시조 묘의 나무가 연리되었으며, 고구려 양원왕 2년(546) 2월에 서울의 배나무가 연리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사」에도 광종 24년(973) 2월에 서울 덕서리에서 연리지가 났으며, 성종 6년(987)에 충주에서도 연리지가 생겨났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처럼 연리지의 출현을 일일이 역사책에 기록할 만큼 희귀하고 경사스러운 길조로 생각한 것이다.

고려 중기 이규보의 시문집인 「동국이상국집」의 고율시(古律詩)에 “그대 비록 후배라 함께 공부 안 했으나/연리지 나무처럼 한집안 형제 같네…”, “난새는 짝 잃으면 못 떠나고 방황하네/ 초목 중엔 연리지가 의좋기로 소문나니/ 꽃 마음은 한가지나 꽃답기는 다르도다/ 부부가 없다면 짝이 어찌 될 것이며/ 형제 또한 없다면 기러기가 어이 줄서 가랴…” 하며 친구 사이의 우정과 혈육의 정을 연리지에 비유했다.

또 김시습의 「금오신화」에도 “연리지 가지 끝엔 붉은 꽃/ 서러워라 내 인생 나무만도 못하구나/ 박명한 이 청춘 눈물만 고이네”라고 하여 저승에서 나누게 되는 사랑의 서러움을 연리지와 비유하고 있다.


나란히 붙은 나뭇가지.  다정한 연인. 부부의 애정이 지극히 깊음

중국의 전설에 의하면 동쪽의 바다에 비목어(比目漁)가 살고 남쪽의 땅에 비익조(比翼鳥)가 산다고 한다. 비목어는 눈이 한쪽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두 마리가 좌우로 달라붙어야 비로소 헤엄을 칠 수가 있고, 비익조는 눈도 날개도 한쪽에만 있어 암수가 좌우 일체가 되어야 비로소 날 수 있다고 한다. 
                                                     

연리지

연리지(連理枝)라면「나란히 붙어 있는 나뭇가지」를 뜻하며 천년에 한번 나타날까말까 하다는 희귀한현상이다.곧 뿌리가 다른 두 그루의 나무가 사이좋게 합쳐진 가지가 連理枝다.간혹 거대한 고목에서나 그런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다정한 느낌이 들어 보기에도 좋다.이처럼 '比翼'이나 '連理' 모두 그 말이 가져다 주는 이미지와 같이 남녀간의 떨어지기 힘든 결합을 뜻한다.


비익조 (比翼鳥) ,
중국에서 암수 한쌍이 한몸이 되어 난다는 전설상의 새. 봉선(封禪)이 행해질 때는 동해에서 비목어(比目魚)가, 서해에서 비익조가 온다고 하는 한편, 《산해경(山海經)》에서는 숭오산(崇吾山)의 만만(蠻蠻)이라는 비익조가 홍수를
몰고 온다고 하여 길조(吉鳥)이기도 한 반면 흉조이기도 하다.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서 <하늘에 있거든 바라건대 비익조가 되소서> 하고 노래한 것처럼 남녀의 깊은 인연의 예로도 이용되며, <비익총(比翼塚)>은 이것에 근거한다.


비목어(比目魚)

동쪽바다에는 비목어가 살았고 눈이 한쪽에 하나밖에 없으므로 두마리가 자우로 달라붙어야 비로소 해염을 칠수있고 한자어로 비목어(比目魚) 토는 첩(貼)이라 하였다. <지봉유설>에 광어(廣魚:넙치)및 설어(舌魚:서대)를 첩류(貼類)라 하였다. 가자미 광어 넙치를 말하며 남녀간의 애듯한 사랑을 이야기 할때 쓴다.


 

 

우리 나라에서의 연리지 나무들

 이렇게 연리지는 나타나는 것 자체가 희귀하며 사랑의 상징으로써 옛부터 상서롭게 여겨왔다. 기록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연리지가 최근 잇달아 알려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자진해서 나타난 게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사랑의 밀어를 나누고 있는 현장을 들킨 것이다.

2001년 7월, 경북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라는 운문호 옆의 작은 마을에서는 오랜만에 귀향한 몇 사람과 동네사람들이 모여 앉아 세상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 누군가가 나란히 선 소나무 두 그루가 가지를 내밀어 서로 꼭 붙잡고 있는 ‘이상한 나무’를 봤다는 얘기를 꺼냈다. 전설처럼 알려져 오던 신비스런 연리지의 진짜 모습이 처음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나이가 4, 50년쯤으로 추정되는 이 연리지 소나무는 자동차 도로에서 1시간 정도 걸어올라가야 하는 깊은 산속 북쪽 비탈진 곳에 나란히 서 있다. 땅 위 약 2.6m 높이의 굵은 가지 하나가 뻗어내려와 아래쪽에 있는 나무를 꼭 잡고 있는 형상이다. 손을 내민 쪽의 소나무는 지름 한 뼘 정도이며, 한 발짝 떨어져 내민 손을 반갑게 잡고 있는 나무는 이보다 조금 작다. 마치 등산길에 나선 부부가 비탈길에서 넘어지려는 아내 손을 꼭 잡아주자, 가슴으로 손을 감싸 안고 정겹게 남편을 올려다보는 형국이다. 이 연리지나무는 민족과 애환을 같이 해온 순수 우리 소나무라는 점에서도 더욱 의미가 깊다. 조금 떨어져 보면 H자를 쏙 빼닮았다.

다시 2003년 5월에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에서 소나무연리지가 발견되었다. 이 나무는 나이가 120~130년쯤 되어 보이며 지름은 한아름이나 된다. 땅 위 5.5m 높이에서 굵은 가지가 나와 서로 이어져 있다. 마을 뒷산 자락에 모여 자라는 여러 그루의 소나무 중 약간 구불구불한 나무 두 그루가 가까이서 서로 마주 보면서 다리를 놓듯이 하였다. 연리지 나무의 바로 옆에는 줄기의 밑동이 서로 붙어버린 연리목도 함께 있어서 두 나무가 한몸이 되는 과정의 모두를 볼 수 있다.

충남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에는 오래 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사랑나무라 부르는 동백나무 연리지가 있다. 마을 뒤 천연기념물 136호 상록수림 안에 자란다. 나이는 100년에서 120년 정도로 보이며 지름이 한 뼘이 채 안된다. 높이 2.5m에서 약간 비스듬하게 옆 나무와 이어져 있다. 마을 노인들의 이야기로는 자신들이 어릴 적부터 서로 붙어 있었다니 아마 태어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천생연분 나무로 보인다. 동백나무는 핏빛 꽃잎과 꽃이 통째로 떨어지는 섬뜩함 때문에 흔히 비극적인 사랑에 비유된다. 그러나 이곳 동백나무 연리지는 그 사이로 남녀가 지나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널리 알려질 만큼 변치 않는 사랑나무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지금까지 알려진 연리지나무는 모두 3그루이다. 지금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아 그렇지 찾아보면 더 있을 것이다. 같은 종류의 나뭇가지와 가지가 맞닿아서 오랜 세월이 가면 연리지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항상 있어서다.

그러나 연리목은 연리지보다는 자주 만날 수 있다. 자연상태에서 두 나무가 가까이 자라다가 지름이 굵어지면 맞닿게 되고 서로 움직일 수 없으니 둘이 합쳐질 수밖에 없어서다. 연리목의 모양이 독특한 나무로서는 충남 금산군 금산읍 양지리 장동마을의 팽나무 연리목이다. 마을회관의 언덕바지에 자라는데, 아래는 마치 두 남녀가 얼싸안고 있는 형상이며 위는 서로가 입맞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150여년 전 평소에 아내 사랑이 남달랐던 한 남편은 아내가 죽은 후 이곳에 팽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다음날 가보니 두 그루가 되어 있었다한다. 자라면서 이처럼 ‘포옹나무’로 변하자 마을사람들은 아내의 넋이 깃들었다고 하여 부부팽나무를 아끼고 있다. 이외에도 경북 영주시 순흥 면사무소 앞마당에서 줄기를 서로 휘감아 가면서 서로 붙어 있는 소나무를 만날 수 있으며 숲속의 등산길에서는 연리목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의 소나무연리지  

청도군 운문면 지존리 소나무연리지  

청도군 운문면 지존리 소나무연리지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의 소나무연리지

충남 외연도 동백나무연리지 

충남 금산읍의 팽나무연리목



                       


 충남 금산읍의 팽나무연리목 

 소나무와 상수리나무의 연리목  

 사랑을 나누듯 줄기부터 맞닿아 자라고 있는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연하봉의 참나무 연리지(連理枝). 수령 70여년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참나무들은 1m여 높이에서 합쳐져 한몸이 됐다.

 

 

청산에 머물다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