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부산유형문화재

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5호 동래부 동헌 외대문

오늘의 쉼터 2010. 6. 28. 17:24


종     목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호

명     칭동래부 동헌 외대문 (東萊府 東軒 外大門)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관아
수량/면적

1동/21.71㎡

지 정 일

1972.06.26~

소 재 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61 (수안동, 동래부 동헌 충신당)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부산광역시

관 리 자

동래구

일반설명

이 문은 조선후기 동래부의 군사적 중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조선후기에 동래부는 일본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국방과 외교상 중요한 곳이었다. 때문에 다른 고을에 비해 관아의 수도 많았고, 규모도 컸다. 이 문의 첫 건립은 1636년(인조 14) 동래부사 정양필(鄭良弼)이 동래부동헌을 건립할 때 함께 건립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쳤으며, 현재의 건물은 1870년(고종 7) 동래부사 정현덕(鄭顯德)이 중건한 것이다. 원래 동래부동헌의 대문으로 망미루 뒤쪽에 있었던 것을 일제시대에 시가지 정리를 하면서 연고도 없는 금강공원 안으로 옮겨졌다가 2014년 8월 15일 동래부 동헌 경내 지금의 자리로 옮겨져 있다. 이것은 1655년(효종 6) 동래부의 군사권이 경사좌병영의 지휘 아래 있던 경주진관(慶州鎭管) 소속에서 독립하여 동래독진(東萊獨鎭)이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또 아래 좌우의 기둥에는 진변병마절제영(鎭邊兵馬節制營)과 교린연향선위사(交隣宴餉宣慰使)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 뜻은 동래부가 진변의 병마절제영이고, 대일외교 때 일본사신을 접대하던 관아라는 것이다.

이 문은 우리 고장에 남아 있는 전형적인 관아 대문이다. 규모는 작으나, 3문형식의 흔하지 않은 건물이다.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다. 지붕은 솟을대문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천장의 밑에 홍살이 설치된 것으로 보아 원래 외삼문(外三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래부 동헌 외대문

동래부 동헌 외대문(후면)

동래부 동헌 외대문(좌측면)

동래부 동헌 외대문

동래부 동헌 외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