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부산문화재자료

문화재자료 제2호 (부산기장군) 기장남산봉수대(幾張南山烽燧臺)

오늘의 쉼터 2010. 6. 5. 18:13

 

종 목 문화재자료  제2호 (기장군)
명 칭 기장남산봉수대(幾張南山烽燧臺)
분 류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통신/ 봉수
수량/면적 1기 / 28,165㎡
지정(등록)일 1995.12.15
소 재 지 부산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산52
시 대 고려시대
소유자 부산광역시
관리자 기장군
상세문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문화관광과 051-709-4062
 
 일반설명
 
봉수대는 위급한 사항이 발생하거나 외적의 침입 등이 있을 때 그 사실을 연기나 횃불로 신호하여 중앙으로 알리는 옛 통신시설의 하나로 서로가 잘 보이는 산 정상에 설치하였는데, 원봉(原烽)과 간봉(間烽)을 두었다. 불빛과 연기의 숫자에 따라 위급한 정도가 정해져 있었고, 비가 오거나 날씨가 좋지 않아 봉수대 간의 신호가 불가능하면 봉수대를 지키던 군사가 직접 달려가 다음 봉수대에 알렸다.
연변봉수(沿邊烽燧)의 하나인 남산봉수대는 기장읍성의 남동쪽에 위치한 봉대산(해발 229m) 정상 능선부의 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가까운 대변항과 죽성만을 포함하여 동북쪽의 간절곶에서 서남쪽의 송정에 이르는 동남해안과 남쪽으로 대마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봉수대로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남산봉수대는 동래에서 경북·충북·경기도를 거쳐 광주 천천령으로 연결되는 제2로 봉수로에 속하는 간봉 중의 하나로, 남으로는 해운대 간비오산 봉수대와 북으로 임랑포봉수대, 아이봉수대와 연결된다.
남산봉수대는 처음 축조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1425년(세종 7년) 이전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막연히 추측되어 왔다. 그러나 2011년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하부 퇴적층에서 고려청자 편과 동시대 어골문(魚骨紋) 기와편이 확인됨에 따라 초축(初築) 시기가 고려시대로 소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연소실, 연대(燃臺), 부속 건물지, 방호벽 등에서 수차에 걸친 개수 및 개축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이를 통해 남산봉수대의 탄생부터 소멸까지의 역사를 ‘고려왕조의 어느 시점에 왜구 방어를 목적으로 활용되다 조선 세종 대에 정비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재축하여 1894년 봉수제가 철폐될 때까지 유지되었다.’라고 어느 정도 구체화 할 수 있게 되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봉수대의 규모는 방호벽 직경 30~36m, 둘레 110m, 연대 직경 12~14m, 높이 5m, 둘레 42m로 지금까지 발굴조사 된 동남해안 연변봉수 중 가장 큰 것이다. 아울러 방호벽 내의 봉수대 부속 건물터는 잔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데, 기존의 봉수대 발굴조사에서 이렇게 양호한 형태의 부속 건물지가 조사된 예가 없다.
그리고 주요 시설인 연대와 연대 오름시설, 방호벽, 건물지와 문지 등의 구조가 매우 양호한 상태로 확인되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봉수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따라서 기장 남산봉수대는 영남 지역 동․남해안 소재 연변봉수의 원형을 추정하는 데 매우 유용하고 귀중한 자료이다.  

 


기장남산봉수대

기장남산봉수대

기장남산봉수대

기장남산봉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