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립 (李裕酌,1907~1986)![]() 호는 한암당(寒闇堂) 또는 정산초인(靜山樵人). 한암당(寒闇堂) 이유립 선생은. 1907년 평북 삭주군 구곡면 안풍동 구령포 청계령산 아래 청계곡에서 독립운동가 단해(檀海) 이관집(李觀집) 선생의 4남으로 출생하였다. 의민사(義民社) 천마산대의 소년통신원으로 뽑혀 전봉천과 함께 국내의 통신연락을 도왔다.
24세인 1930년 「삼육전재 국권회복(三育全材 國權回復)」이라는 해학 이기(李沂)선생의 신교육의 뜻을 발휘하기 위하여 삼육사(三育社)를 조직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회람잡지《三育》을 발행하기도 하였는데.《三育》7월호에「광개토성릉비문징실고廣開土聖陵碑文徵實考」등의 기사로 인하여 삼육사는 1931년 7월 31일 강제 해산되었다.
57세때인 1963년 단학회의 3대강령인 '제천보본(祭天報本)', '경조홍방(敬祖興邦)'. '홍도익중(弘道益衆)'을 완전 계승하여 단단학회(檀檀學會)로 조직 확대하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69세인 1975년 5월 8일《세계문명동원론(世界文明東源論)》을 미국의 하버드. 워싱턴. 콜롬비아. 하와이. 캘리포니아 등 5개 대학교에서 주문해 갔다.
70세인 1976년 박창암. 안호상. 유봉영. 문정창. 박시인. 임승국 제씨와 함께 [국사찾기 협의회]를 조직하고 잡지《자유》에 옥고를 기고하기 시작하였으며,
출처:한배달2001년7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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