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명승 제3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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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광한루원(廣寒樓苑) |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원 |
수량/면적 | 69,795㎡(지정구역), 8,371㎡(보호구역) |
지 정 일 | 2008.01.08 |
소 재 지 | 전북 남원시 천거동 78번지 등 |
시 대 | 조선시대 |
소 유 자 | 국유,공유,사유 |
관 리 자 | 전북 남원시 |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을 표현한 우리나라 제일의 누원이다.
원래 이곳은 조선 세종 원년(1419)에 황희가 광통루라는 누각을 짓고, 산수를 즐기던 곳이었다. 1444년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광통루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이곳을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후 ‘광한루’라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1461년 부사 장의국은 광한루를 보수하고, 요천의 맑은 물을 끌어다가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었다. 호수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가로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날 단 한번 만난다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를 연못 위에 설치하였다. 이 돌다리는 4개의 무지개 모양의 구멍이 있어 양쪽의 물이 통하게 되어 있으며, 한국 정원의 가장 대표적인 다리이다. 1582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광한루를 크게 고쳐 짓고, 은하수 연못 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방장·영주섬을 만들어 봉래섬에는 백일홍,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영주각’이란 정자를 세웠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왜구들의 방화로 모두 불타버렸다. 현재의 광한루는 1639년 남원부사 신감이 복원하였다. 1794년에는 영주각이 복원되고 1964년에 방장섬에 방장정이 세워졌다. 이 광한루원은 소설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인연을 맺은 장소로도 유명하여, 1920년대에 경내에 춘향사를 건립하고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에는 춘향제가 열린다.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을 표현한 우리나라 제일의 누원이다.
원래 이곳은 조선 세종 원년(1419)에 황희가 광통루라는 누각을 짓고, 산수를 즐기던 곳이었다. 1444년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광통루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이곳을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후 ‘광한루’라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1461년 부사 장의국은 광한루를 보수하고, 요천의 맑은 물을 끌어다가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었다. 호수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가로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날 단 한번 만난다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를 연못 위에 설치하였다. 이 돌다리는 4개의 무지개 모양의 구멍이 있어 양쪽의 물이 통하게 되어 있으며, 한국 정원의 가장 대표적인 다리이다. 1582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광한루를 크게 고쳐 짓고, 은하수 연못 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방장·영주섬을 만들어 봉래섬에는 백일홍,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영주각’이란 정자를 세웠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왜구들의 방화로 모두 불타버렸다. 현재의 광한루는 1639년 남원부사 신감이 복원하였다. 1794년에는 영주각이 복원되고 1964년에 방장섬에 방장정이 세워졌다. 이 광한루원은 소설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인연을 맺은 장소로도 유명하여, 1920년대에 경내에 춘향사를 건립하고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에는 춘향제가 열린다. 광한루원은 은하수<銀河水>를 상징하는 연못가에 월궁<月宮>을 상징하는 광한루와 지상<地上>의 낙원인 삼신산<三神山>이 함께 어울려 있는 아득한 우주관<宇宙觀>을 표현한 한국 제일의 누원<樓苑>이다. 원래 이곳은 조선<朝鮮> 세종<世宗> 원년<元年>(1419) 황희<黃喜>가 광통루<廣通樓>라는 작은 누<樓>를 지어 산수<山水>를 즐기던 곳이다. 세종 26년(1444) 전라도<全羅道> 관찰사<觀察使> 정인지<鄭麟趾>가 광통루에 노니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이곳은 달나라 미인 항아<姮娥>가 사는 월궁 속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한후 광한루<廣寒樓>라 이름을 고쳤다. 세조<世祖> 7년(1461) 남원부사<南原府使> 장의국<張義國>은 광한루를 중수<重修>하고 요천<蓼川>의 맑은 물을 끌어들여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고,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은하수에 가로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7월 7석날 단 한 번 만난다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烏鵲橋>을 연못 위에 설치하였다. 이 석교는 네 개의 홍예<虹霓>로 구성되었는데, 한국 조원<造苑> 공간 속에 있는 가장 대표적인 다리이다. 선조<宣祖> 15년(1582)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鄭撤>이 광한루를 크게 고쳐 짓고 연못 속에 신선이 살고 불로초<不老草>가 있다는 봉래<逢萊>섬, 방장<方丈>섬, 영주<瀛洲>섬의 삼신도<三神島>를 만들고, 봉래섬에는 백일홍<百日紅>,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었으며, 영주섬에는 영주각<瀛洲閣>이란 정자를 세웠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丁酉再亂>때 왜군이 남원성을 침공하여 광한루가 불타고 누원이 모두 황폐하였다. 선조 40년(1607)에 작은 누각이 복구되고, 인조<仁祖> 17년(1639)에 남원부사 신감<申鑑>이 현재의 광한루를 복원하였다. 정조<正祖> 18년(1794)에는 영주각이 복원되고, 1964년에 방장섬에 방장정<方丈亭>이 건립되었다. 이 광한루원은 소설 『춘향전<春香傳>』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인연을 맺은 처소로도 유명하여 1920년대에 경내에 춘향사<春香祠>를 건립하고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화백<畵伯>이 그린 춘향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端午節>에는 춘향제가 성대히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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