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의 수도 변천
1.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思達) - 무순시 대류향 단군 왕검 개국시의 최초의 아사달로
이제까지 한반도 평양설(신증동국여지승람), 하얼빈설(신 채호 등), 본계설(윤내현 등)이 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정확한 문헌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추정하기로 백악산아사달 유궐(柳闕)은
무순시(撫順市) 동북쪽 대류향(大柳鄕)이고 단군 왕검릉(王儉 王陵)은 무순시(撫順市) 흑호산(黑虎山)에
있었다.
2. 당장경(唐藏京); 창도현 대영반석성(昌圖縣 大營盤石城) 3세 단군 가륵(嘉勒)이 당장경(唐藏京)에
도읍하였다고 [단기고사(檀奇古史)]가 전한다.
이때 백악산 아사달은 가륵의 차자가 남아서 통치하였다.
3. 평양성(平壤城); 진상둔 탑산산성(陣相屯 塔山山城) 4세 단군 오사구(烏斯丘)는 [단기고사(檀奇古史)]에서
건청궁(乾淸宮)과 평양성(平壤城) 을 쌓았는데 장당경에서 평양성으로 천도하였다.
4. 소밀랑(蘇密浪); 이수현 소소성(梨水縣 昭蘇城) 6세 단군 달문(達門)은 새로 옮겨간 새도읍
신경(新京)에 대하여 노래를 짓게 하였는데 <서효사(誓效詞)>라고 한다.
바로 길림 아사달로 길림시 교외의 안달목(安達木), 사달구(騷達溝), 아시하달(阿什哈達) 등이
길림시가 곧 달문 단군의 새로운 백악산아사달이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5. 궁홀산금미달(弓忽山今彌達); 개원시 용담산성(開原 龍潭山城) 9세 단군 아술(阿述) 때에
청해성(靑海城)의 욕살(褥薩), 우착(于捉)이 궁성을 침범하여, 단군 아술이 상춘(常春) 구월산(九月山)으로
피하고 구월산에 궁궐을 신축하였다.
6. 녹산 아사달 21세 단군 소태(蘇台) 이하 삼한조선(三韓朝鮮)은 힘을 합쳤지만 역부족으로 반란군
색불루(索弗婁)와 싸워서 패하고, 소태 단군은 색불루에게 단군 위를 내주고 아사달 (阿斯達; 今 燕州城)에서
은거하였으며, 색불루는 녹산(鹿山)에서 22세 단군으로 즉위하였다.
22세 단군 색불루(索弗婁)는 신도(新都)라고 하는 새로운 아사달로 천도하였다.
그런데 <마한세가>에서는 색불루가 혁명으로 등극하여 녹산(鹿山)에서 즉위하고 녹산도 새로 백악산
아사달로 부르도록 하였다. 따라서 부여신경이자 녹산아사달도 아직은 송화강변이다.
7. 영고탑(寧古塔); 영안 동경성(寧安 東京城) 25세 단군 솔나(率那)는 <단군세기(檀君世紀)>에서
상소도(上蘇塗)에 있었다고 하며 [단 기고사(檀奇古史)]에서는 영고탑(寧古塔)으로 천도하였다고 한다.
8. 장당경(藏唐京); 창도현 대영반석성(昌圖縣 大營盤石城) 44세 단군 구물(丘勿)은
본래 백민성주(白民城主; 今 八面城)였으나, 43세 단군 물리(勿 理)가 외적 우화충(于和沖)에게 패하여
사망하자 스스로 궐기하여 압록(鴨 ) 18성의 지원 군을 받아 외적을 물리친 이후에, 나라 이름을 대부여
(大夫餘; 夫餘朝鮮)로 고치고 장당경 (藏唐京)으로 천도하였다.
9. 해성(海城); 무순시 망화구(撫順 望花區) 44세 단군 구물(丘勿)은 장당경(藏唐京)에서 즉위한 해에,
해성(海城)에 이궁(離宮)을 지어 역시 평양성이라고 부르도록 하였다.
이 해성은 무순시 망화구(撫順 望花區)의 옛이름 해성(海城)으로 인하여 무순시 망화구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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