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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인 Shine
오늘의 쉼터
2008. 11. 28. 17:35
Sop. Emma Kirkby
듣고계시는 음악은
비발디(Vivaldi)의
Nulla in Mundo Pax Sincera
라는 노래입니다.
뜻은,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언제 나오는 곡이냐하면..
영화 중반에 부인인 질리언을 맨 처음에 만나게 될때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위 "방방"
-_- 위에서 데이빗이 이 노래를 휴대용카세트 플레이어로
들으면서 하늘을 향해 뛰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영화 연주장면
감독
스코트 힉스 Scott Hicks
주연
제프리 러쉬....데이빗 헬프갓 (성인)
Geoffrey Rush....David Helfgott as an Adult
노아 테일러....데이빗 헬프갓 (청소년기)
Noah Taylor....David Helfgott as an Adolescent
아르민 뮐러-스탈....엘리어스 피터 헬프갓
Armin Mueller-Stahl....Elias Peter Helfgott
린 레드그레이브....질리언 헬프갓
Lynn Redgrave....Gillian Helfgott
구지 위더즈....캐더린 수잔나 프리처드
Googie Withers....Katharine Susannah Prichard
소니아 토드....실비아
Sonia Todd....Sylvia
니콜라스 벨....벤 로젠
Nicholas Bell....Ben Rosen
존 길거드....세실 팍스 교수
John Gielgud....Cecil Parkes
데이빗 헬프갓은 우리가 별난 신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떠올리는 어떤 전형성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자기 놀이터에서는 번개처럼 번뜩이면서도 바깥으로 나가면 영 서툴기 그지없습니다. 그의 뇌와 육체의 기능은 모두 피아노로 몰려 있습니다. 그는 예술가도 아닙니다. 데이빗 헬프갓은 피아노치는 기계입니다.
2.
그를 이런 괴물로 만든 사람은 바로 그의 아버지 피터 헬프갓입니다. 아버지의 반대로 음악가가 되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인 그는 웬만큼 재능이 있어 보이는 아들을 진짜 음악가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에게 음악은 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올림픽입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손 하나가 여벌로 딸려야 간신히 칠 수 있는 지독한 곡, 자칫 잘못하면 피아니스트가 먹혀버릴 수도 있는 바로 그런 곡입니다. 피터 헬프갓에게 음악 교육이란 예술가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라흐 3번이라는 종점에 최단 시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장거리 주자를 키우기 위한 것입니다.
당연히 데이빗은 정신없이 달려갑니다. 그는 자신을 돌아다 볼 겨를도 없고 자신이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 지 확인할 여유도 없습니다. 그 결과 그는 점점 골이 비어가고 손가락만 신나게 돌아갑니다. 물론 그의 머리 어느 곳에서는 그의 음악을 뮤직박스의 땡글거림 이상으로 만드는 무언가가 있습니다만, 그런 데에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습니까? 라흐 3번이 저 앞에 놓여 있는데. 만약 피터 헬프갓이 좀 더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면 이 영화는 데이빗이 어떤 콩쿨에서 라흐 3번을 신나게 띵똥거리는 것으로 끝났을 겁니다.
그러나 피터 헬프갓은 그렇게 정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가족이 깨진다는 황당한 이유로 데이빗의 유학을 막습니다. 할 수 있는 짓이라곤 건반 때리기 밖에 없는 아이에게 이것은 폭력입니다. 건반을 더 잘 때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유학가는 길밖에 없는데 말이에요. 이 엄청난 폭력의 결과 그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반항을 합니다. 그 반항이라는 것도 데이빗에게 있어 최초로 의미있는 여성인 캐더린 프리처드에게서 대출 받은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요. 그는 영국으로 날아갑니다.
젊은 예술가의 예술적 도약? 얼핏 보기엔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데이빗의 골은 비어있고 그의 행동은 피터 헬프갓의 조종 아래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나가 빈 자리를 외팔이 세실 팍스 교수로 매웁니다. 팍스 교수는 피터 헬프갓보다 더 정상적이고 더 지적이고 더 이성적인 것만 빼면 데이빗에게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피터와 다를 게 하나 없습니다. 데이빗은 그 아래에서 여전히 라흐 3번을 선택하고 그리고 그 곡을 성공적으로 연주합니다.
그런데 큰일 났습니다. 그가 진짜 예술가였다면 그에겐 종착역이란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피아노 건반 달리기 선수라면, 그리고 지금까지 라흐 3번을 향해 달려 왔다면 사정은 다릅니다. 그는 연주를 성공시킴으로써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났지만 그의 인생의 목표까지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피이이이이이이이융! 그 관성으로 너무 멀리 날아가버리고 맙니다. 한마디로 말해 맛이 간 것입니다.
3.
여기서부터 2부가 시작됩니다. 맛간 헬프갓은 10년 동안 건반도 못만지면서 정신병원에서 썩다가 어느 오르가니스트에 의해 구출됩니다. 그리고 카페에서 연주를 시작하고 질리언이라는 점성술사를 만나서 결혼하고 재기 연주회를 갖고... 한마디로 역경에 빠진 예술가가 재기에 성공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할만한 짓은 모두 다 합니다. 결과는 교훈적이기도 합니다. 음악 올림픽 같던 남성적인 세계는 끝이 났습니다. 이제 그를 맞는 것은 질리언과 그밖의 다른 여성들이 대표하는 진정한 기쁨으로 가득 찬 음악의 파라다이스입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이 영화에는 뭔가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이 영화는 이런 부류의 다른 영화들과 다릅니다. 뭔지 알아맞춰 보시겠어요? 십 초 드릴게요. 시작합니다. 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 끝났습니다.
정답은 간단합니다. 이 영화에는 극복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재기의 고통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헬프갓의 고뇌는 1부에서 끝났습니다. 2부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사랑과 행복 뿐입니다. 그러니 [샤인]은 '인간 승리'에 대한 영화가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이 그에게 음악을 되돌려 주지 않았냐고요? 로맨틱하기도 하셔라. 하지만 사랑이 오기 전에도 그에겐 음악이 있었습니다. 그에게서 음악을 끌어내고 싶으면 사랑이 아니라 피아노와 의자만 주면 됩니다. 그의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건반 위로 올라가 아무 음악이나 콰르르 쏟아낼 것입니다.
제프리 러쉬가 연기한 헬프갓은 사랑스러운 광인입니다. 그는 정말 행복해보이지 않습니까? 광기가 그로부터 수줍음을 날려 버렸으니, 그는 모든 사람들을 거리낌없이 사랑합니다. 광기가 그의 이성을 날려 버렸으니, 그는 논리적으로 생각할 필요도,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광기가 다른 사람들을 관대하게 했으니, 그가 방을 엉망으로 어지럽혀도, 알몸으로 끝없이 트램블링을 해도 뭐라는 사람 하나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에게는 이제 경쟁 따위는 코끝도 보이지 않는 진정한 음악의 기쁨이 있습니다. 2부에서 쏟아지는 이런 행복의 향연은 1부와 대조하지 않아도 너무나 지나쳐서 초현실적으로까지 보입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역경을 극복한 인간 정신의 승리' 따위가 아닙니다. 이 영화의 진짜 주제는 이 남발되는 행복 자체입니다.
사람들은 경험할 수 없는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며 [카사블랑카]를 보고 경험할 수 없는 모험을 체험하기 위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봅니다. [샤인]은 우리에게 우리가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행복의 과잉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를 진짜로 즐긴 관객들은 너무 많아서 화면 밖으로 넘쳐내려 극장 바닥까지 흥건하게 적시는 데이빗 헬프갓의 환희를 맛본 사람들입니다. (97/02/25)
실화를 다룬 많은 영화들처럼 [샤인]도 나중에 수많은 소동에 휘말렸습니다. 사실 [샤인]은 극적 재미를 위해 실제 사건을 지나치게 부풀린 경향이 있죠. 대표적인 예로 요새 헬프갓은 결코 영화에 묘사된 것처럼 굉장한 피아니스트가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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