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능

◈ 왕릉 주변관리

오늘의 쉼터 2008. 10. 22. 17:53


조선 왕릉의 원형 보존
조선 왕릉은 도성에서 10리 밖, 100리 이내에 위치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으므로,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왕의 능이나, 한양 천도 이전에 승하한 왕의 능 등 특별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현재 서울과 서울 근교에 분포해 있다. 조선 왕릉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에서 100년 전까지 조성되었으나 조성 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훌륭하게 원형이 보존되어 왔다. 여러 차례의 전쟁과 20세기에 급격히 진행된 도시 개발을 견딘 후에도 조선 왕릉이 온전한 모습으로 현재를 지킬 수 있었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왕릉을 지켜온 사람들
각 왕릉에는 령(令) 혹은 직장(直長)이라 일컫는 종5품 관리가 1명, 종9품인 참봉(參奉)이 1명 배치되어 왕릉의 관리를 맡았다.
이들은 능역에서 행해지는 공사를 총감독하였고,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르는 능의 수호군, 능군을 관리하였다. 이들은 매일 능군 2명을 뽑아서 왕릉 주위를 순찰하게 하였다.
주민들을 동원한 송충이 잡기
왕릉은 겹겹이 산으로 에워싸인 곳에 위치하며, 이에 더하여 인공적으로 산림을 조성하였으므로 산림의 관리가 관건이었다. 당시에도 현재와 같은 병충해의 피해가 심각했는데, 요즘과 같은 방제약품이 있을 리 만무했다. 따라서 시절에 맞추어 인근 주민들을 동원해 능 부근 20리까지 송충이 등의 벌레를 잡아 없애는 방법을 썼다. 매년 4월 그믐날 이후 8월 14일까지 매달 그믐과 보름에는 하급 관리들이 합심하여 능역의 잡목을 손보았다. 눈이 와서 쌓이면 즉각 치워야 했다.
주민들을 동원한 송충이 잡기
조선 왕릉의 주변으로는 둘레 8㎞(20리)에 달하는 화소(火巢)를 만들었다. 화소란 글자 그대로는 불길이 머무는 곳이란 뜻으로 능 바깥에서 발생한 불길이 능 구역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방화벽의 일종이다. 이 화소 구간에는 산불을 막기 위하여 능원, 묘 따위의 울타리 밖에 있는 나무나 풀까지 모두 불살라 버려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철저한 화재 예방책을 강구한 것이다.
능역의 나무 가꾸기
능역에서 무단으로 나무를 벤 사람은 붙잡아 치죄하고 죄가 무거운 경우에는 예조로 압송했다. 식목 행사도 빠뜨리지 않았는데 매년 10월 2일에는 능역 안 적당한 곳을 가려 소나무 같은 나무를 식목하는가 하면, 매년 가을에는 상수리나무를 파종하기도 했다. 능역 안에서는 나무 하나도 제대로 베지 못했으므로, 그 훼손에 대한 책임도 막중했다. 예컨대 대목(大木) 한 그루가 훼손되면 담당관원은 3년 동안 유배조치 되었으며, 두 그루를 훼손하면 나라 밖으로 추방당하는 큰 죄를 물었다.
왕릉 주변 옛 풍경과 현재 풍경

과거 조선 왕릉은 사후의 왕을 모시는 또 하나의 궁궐로서 지엄한 공간으로 인식되었고, 주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왕릉에 대한 많은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현재 조선 왕릉은 도심 속에 자리 잡고 있어 복잡한 빌딩숲과 이웃하기도 하고,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왕릉 주변의 울창한 숲을 수목원으로 내어주는 등 21세기의 필요와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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