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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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쉼터 2008. 10. 22. 17:25
순조의 유릉을 조영하고 있는 사람들

 

나이 칠십에 능참봉
“나이 칠십에 능참봉”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나이 칠십에 능참봉을 하니 하루에 거둥이 열아홉 번씩이라.” 는 속담을 줄인 것이다. 능참봉이란 왕릉을 관리하는 9품 말직의 관직이다. 70세의 노령까지 선비로만 머무르다가 마침내 능참봉이라는 관직을 얻어 명예롭고 영광스럽기만 할 줄 알았더니, 하루에도 열아홉 번이라 할 만큼 잦은 왕의 행차 때문에 고된 일만 많다는 뜻으로, 실속 없이 바쁜 상황을 빗댈 때 위와 같은 속담을 쓰곤 한다.
능참봉이 되기 위한 자격 요건
왕릉을 관리하는 공직은 고려시대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능권무직의 형태로 이어지다가 세조가 관제개혁을 한 이후 능참봉직이 생겼다. 능참봉직은 비록 종9품에 해당하였지만, 임금의 능을 관리한다는 상징성 때문에 관료진출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뿐 아니라 이제 막 관직에 발을 들여놓은 자들의 청직(淸職)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능참봉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양반의 신분이어야 했다. 보통 생원, 진사 혹은 유학 중에서 임명이 되었으며, 어린 사람보다는 연륜이 있는 자가 임명되었다.
능참봉의 의무와 벌이
『경국대전』에 따르면 7품 이하의 관리는 재직 근무일수가 450일이 되어야 다른 관직으로 옮겨갈 수 있다. 능참봉은 한 능에 두 사람이 배치되어 한 달에 보름씩 근무하였기 때문에 2년이 넘는 시간을 능 관리인으로 지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3~5개월을 근무하였다.
능참봉이 관리로서 받는 녹봉은 매달 29일 쌀 10두, 콩 5두로, 광흥창에서 수령할 수 있었다. 넉넉한 녹봉은 아니었으므로,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는 종종 빚을 지기도 했다.
능참봉과 능군의 일과
능참봉의 업무는 매우 다양하였다. 능에서 제례가 있으면 한 달 전쯤 축향(祝香)을 받으러 한양에 들렀다. 정자각이나 비각을 개수하고 사토를 수축하는 등의 큰 공사가 생기면 능역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것 또한 모두 능참봉의 일이었다. 능참봉의 또 다른 직분은 능군을 관리하는 것이다. 능군은 능 주변에 위치한 마을에서 차출하였는데,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르렀다. 수호군은 능과 능 주변의 제초작업, 벌목을 금지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능이 잘 관리되기 위해서는 수호군의 작업에 달려있었기에 능참봉은 수호군의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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