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의 창조적 힘 갈무리 |
산천재
한 시대의 위대한 인물이나 그의 세계관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남겨놓은 글이나 동시대인 혹은 제자들이 쓴 글을 읽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땅을 택하여 살았는지를 보는 방법도 있는데, 풍수에서는 살았던 터를 통해 그 사람의 인품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자연과 인간의 합일이라는 기본 전제에서 본다면 이는 당연한 말이다. 인간과 대지는 혈연관계로 서로를 닮아가기 때문이다. 남명 조식 선생의 산천재와 무덤도 한 가지 좋은 예다. 남명의 터잡기(卜地)에 대한 공식 기록은 성운이 지은 묘갈문(墓碣文)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묘갈문에 의하면 “남명은 61세 때 지리산에 산천재를 짓고 깊이 잠기어 스스로 닦으며 세월을 보내다가 72세에 운명하여, 산천재 뒷산에 안장되었다” (현재 행정구역명은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사리)고 적고 있다. 남명 선생이 터를 잡고 건 편액(扁額) ‘산천재’는 주역 대축괘(大畜卦)에서 유래한다. 대축이란 크게 저축한다는 뜻이다. 대축괘는 간괘(艮卦)와 건괘(乾卦)로 구성되는데 간괘가 산(山), 건괘가 천(天)을 나타내 ‘산천(山天)’이란 용어가 생겨난다. ‘山天’으로 꾸며지는 이미지는 ‘하늘이 산 가운데 있는 모습’이다. 또한 주역에서 산은 ‘멈춘다(止)’, 천은 ‘창조적인 힘’이란 속성을 갖는다. 이 둘의 속성을 다시 합성해보면 ‘산속에서 창조적인 학문의 힘을 키운다’는 뜻이 된다. 산천재란 바로 그와 같은 집을 말한다. 산천재 뒷산에 안장되어 있는 남명의 무덤은 어떨까? 지리산 천왕봉의 한 줄기가 거침없이 곧장 내려와 산천재를 지척에 두고 멈춘 곳에 무덤이 자리한다. 곁가지 없이 산줄기 저 혼자 내려온다. 산능선이 높고 곁가지 하나 없는 만큼 무덤 좌우가 아찔할 만큼 깊어 보인다. 독야청청의 기세라고 할까, 소심한 현대인들은 결코 쓸 수 없는 자리다. ‘안으로는 하늘의 창조적 힘을 갈무리하고, 바깥으로는 산과도 같이 중후하게 서 있는 모습’을 우리는 남명의 무덤 터에서 느낄 수 있다. 이와 같은 남명의 위대한 터잡기가 최근 들어 일부 몰지각한 풍수들에 의해 훼손 되고 있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풍수들이 검증·고증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사실 처럼 말하기 때문이다. 성현들의 묘나 유적지에 대한 풍수 해설이 쏟아져나오는데 상당 부분 고증되지 않은 내용으로, 더러는 성현들의 위대함을 훼손하는 ‘막말’에 가까운 것들도 있다. 풍수학을 하는 이로서 당혹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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