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국가민속문화재 제23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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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순창성황대신사적현판(淳昌城隍大神事跡懸板) |
분 류 | 기록유산 / 서각류/ 목판각류/ 현판류 |
수량/면적 | 1점 |
지 정 일 | 2000.01.13 |
소 재 지 | 전북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 315-4(순창군청 2층 자치행정과 |
시 대 | 조선시대 |
소 유 자 | 순창군수 |
관 리 자 | 순창군수 |
일반설명 성황신을 섬기던 기록을 적은 현판이다. 현판은 널빤지와 종이·비단에 글씨 또는 그림을 그려 거는 것인데, 조선 명조때 제작된 원래의 현판은 남아 있지 않고 영조때에 다시 새긴 현판만이 남아 있다.
가로로 길쭉한 목판으로 나무 결이 그대로 살아 있으며, 위·아래 2개의 판을 이어붙여 하나로 만들었다. 가로 180㎝, 세로 54㎝ 목판에 총 73행, 1,600여자가 세로로 쓰여졌으며, 내용은 고려 충렬왕 7년(1281)부터 조선 순조 23년(1823)까지 성황신에게 작호를 부여했던 것부터 성황당을 고쳐 세웠던 것까지의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 하단부는 글씨체가 상단부와 확연히 다른 것으로 보아 나중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문헌에 따르면 영조 19년(1743)에 만든 것으로 후에 영조 30년(1754)과 순조 23년(1823)에 추가로 새겨 제작된 것이다. 현재 각 지방에서 마을 공동으로 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기록한 것으로 성황신앙의 역사상 변천과정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민속자료로 커다란 가치가 있다. 전문설명
「순창 성황대신사적 현판」은 고려말의 첩문 자료를 기초로 조선 명종18년(1563)에 처음 제작했으나 이것이 낡아 인조11년(1633) 개각했으나 유물이 남아있지 않고 영조19년(1743)에 성황사를 크게 중수하면서 2차로 개각한 것이 이 현판이다. 개각된 이후 영조30년(1754)과 순조23년(1823)에 이 현판 하단에 다른 필체로 추기(追記) 되었다.
가로 180cm, 세로 54cm의 목판에 총 73행, 1600여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 내용은 고려 충렬왕 7년(1281년)에 국가에서 순창 성황신에게 '금자광록대부 삼한공신 문하시□장군(金紫光祿大夫 三韓公臣 門下侍(字破)將軍)'이라는 작호(爵號)를 부여한 이후 조선 순조 23년(1823년) 성황당을 개건한 때까지의 내용을 추가로 기록하여 순창 성황제의 변화 모습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이 현판의 내용으로 「고려사」에 기록된 성황신앙의 내용을 직접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련 기록이 부족한 조선시대의 성황신앙의 변화 모습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지정 현판에 의하면 고려시대에는 국가에서 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작호를 내리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이런 전통을 이어받아 지방의 수령이 제사를 지냈으며, 민간에도 이런 신앙이 뿌리를 내려 지금까지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성황신앙은 일제의 한국민속문화 말살정책과 70년대의 새마을운동으로 크게 쇠퇴하였지만, 지금도 전국 각지에는 성황당이 있어 정초에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 남아 있다. 이 현판은 1992년에 옥천향토문화연구소가 순창 설씨(淳昌 薛氏)의 집성촌이던 전북 순창군 금과면 동전리 마을의 민속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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