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심동신(1824∼?)이 입던 금관조복 중 금관 1점이다. 금관은 조복에 갖추어 쓰던 모자로 양관(梁冠)이라고도 하는데, 량(梁)은 모자의 앞면에서 꼭대기를 지나 뒷면까지 연결되어 붙여진 금색선을 말하며, 그 수에 따라 계급이 구분된다. 이 금관은 5량관으로, 1품의 관리가 쓰던 금관이다.
금관의 모양은 원통형인데 머리둘레와 뒷면 전체에 금칠이 되어 화려하고 윗부분은 검은 비단으로 싸여 있다. 뒷면은 금칠한 나무비녀 2개를 꽂아 고정하였고 비녀의 양 끝에는 술을 감아 늘어 뜨렸다.
이 금관은 1948년 석주선씨가 심동신의 7대 손자며느리로부터 인수받았다고 하며, 1890년대를 전후한 구한말의 유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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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말 고종의 누비저고리로서 평상복으로 착용하였던 옷이다. 고종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의 둘째 아들로서, 철종의 뒤를 이어 등극하였다. 본 유물은 고종의 질녀(姪女)인 안동 김씨 김인규(金仁奎) 부인이 입궐하였을 때 왕실에서 하사받은 유물이다.
자적색 운문숙사(熟紗) 겉감과 흰색 명주 안감을 겹쳐 놓은후 0.3~0.5㎝ 간격으로 정교하게 누빈 잔누비[細樓緋] 저고리이다. 잘게 누빈 누빔선에 풀을 칠하여 인두로 다려 마치 골덴직물처럼 입체적인 효과를 보였는데 이러한 누비형태를 오목누비라고 하였다.
고름은 누비지 않았으며 동정은 달려있지 않으나 깃 부분의 누비 간격이 몸판보다 넓고 바느질도 성글게 되어 동정을 달았던 위치로 확인된다. 겉감은 일정한 크기의 작은 운문 사이에 박쥐문으로 되었는데 이와 동일한 문양의 옷감이 고종의 후궁이었던 광화당의 원삼(중요민속자료 제52호)에 부착된 한삼에 사용되어 흥미롭다.
겉깃의 모양은 둥근 반달깃 형태이며 안깃은 목판깃으로 되어 있는 일반적인 저고리 형태이다. 길이는 57.5㎝이며 화장 80.5㎝ 품 49㎝이다. 진동(24.5㎝)에서 수구(20.5㎝)에 이르는 배래선이 완만한 곡선을 보인다. 국말의 왕실유물들이 대부분 예복 중심의 유물들임에 반해 이 옷은 평상복으로 고종이 입었던 옷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전문설명 이 자주색 누비저고리는 숙사(熟紗)한 솜을 얇게 놓아 정교하게 누벼 만든 옷으로 고종이 평상복으로 입던 옷이다. 동정이 없고 고름은 누비지 않았으며 보관 상태도 아주 양호하다. 한말의 왕실유물들이 다소 현존하고 있으나 대부분 예복 중심의 유물들이다.그러나 이옷은 평상복으로 고종이 착용했던 옷이라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이 저고리의 치수는 길이 57.5㎝, 화장 80.5㎝, 품 49㎝, 수구 20.5㎝이며, 누비 간격은 0.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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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누비저고리 ![](https://t1.daumcdn.net/cfile/blog/99F778425DE33C230F)
고종의누비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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