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기의 왕족 흥완군 이정응(1815∼1848)이 입던 의복으로 관복 12점이다. 흥완군은 남연군의 둘째 아들이며,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형으로 이 유물은 그의 양자인 완순군 이재완에게 전해져 내려오다가 그의 증손인 이철주가 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관복 중 대부분은 소매가 좁은 착수(窄袖)로 되어 있는데, 소매가 넓은 광수(廣袖)에서 착수로 변한 것은 1894년의 의제개혁 이후부터이다. 그런데 이때는 흥완군이 죽고 완순군이 등용된 시기이므로 착수의 관복은 완순군의 것으로 보아야 타당하다.
이 유품은 우리나라 개화기 관복의 변천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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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관복(官服)이 착수(窄袖)로 되어 있는데, 광수(廣袖)에서 착수(窄袖)로 변(變)한 것은 개화기(開化期)에 들어 갑오경장(甲午更張)(高宗 31年, 1894)이후에 이루어진 의제개혁(衣制改革)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따라서 이때는 흥완군(興完君)은 고인(故人)이 된지 오랜 후이고 완순군(完順君)이 등용(登用)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완순군(完順君)은 철종 5년(哲宗 5年)(1855)에 태어나서 광무(光武) 3년(1899)에는 궁내부대신(宮內部大臣)을 지낸바 있기도 하며 1923년(年)에 작고(作故)한 분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