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 제121호 흥완군 의복

오늘의 쉼터 2008. 5. 1. 08:21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121호
명     칭흥완군의복(興完君衣服)
분     류 유물 / 생활공예/ 복식공예/ 의복
수량/면적

일괄(62점)

지 정 일 1983.04.11
소 재 지 서울 용산구  청파동2가 53-12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숙명여자대학교
관 리 자숙명여자대학교

일반설명

흥완군 이정응(1815∼1848)은 남연군의 둘째아들이며,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형이다. 이 유물은 이정응이 입던 옷으로 그의 양자인 완순군 이재완이 보관하다가 이후 그의 후손인 이철주가 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종류는 조복 ·제복 ·상복 ·구군복 ·청철릭 ·쾌자 ·대 ·후수 ·흉배 ·상아홀 ·등거리장식 ·차선 ·청초등롱 등 13종이며 수량은 62점이다.

이 유물들은 일반적으로 흥완군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의복 중 일부는 그 형태로 미루어 양자 완순군의 것으로 추정된다. 관복 대부분은 소매가 좁은데, 넓은 소매에서 좁게 변한 것은 1894년 의제개혁 이후부터이다. 그런데 이때는 흥완군이 죽고, 완순군이 등용된 시기이므로 소매가 좁은 관복은 완순군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유품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조복 밑에 입는다고 해서 중단이라고도 부르는 청초의의 앞뒤에 치마를 붙이거나 소매없이 깃만 살리고 그 위에 적초의를 겹쳐 어깨를 붙여서 마치 청초의의 소매도 있는 것 같은 효과를 주고 있다. 흑삼이 나타나고 있는데, 흑삼은 한말에 청초의를 대신한 것으로 단 사이에 흰선을 가늘게 두르고 직선의 깃 위에 둥근 깃을 붙였다. 집무복인 단령도 겨드랑이 등을 넓게 하기 위해 다른 천을 댄 무가 원래는 뒤로 접혀져 고정이 되어 있는데, 유품에는 양 옆이 터져 있는 것이 있는가하면 두루마기의 무와 같이 앞뒤가 같은 것이 있다.

이 유품은 개화기 관복의 변천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료인 동시에 다양한 형태와 다양한 색상 등을 볼 수 있어 민속자료로서 가치가 크며 당시의 복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전문설명


흥완군(興完君)은 본명이 이정응(李晸應)으로 남연군(南延君)의 둘째아들이며, 그의 형은 흥령군이며 동생은 흥인군과 흥선대원군이다. 조선 순조 15년(1815)에 태어나 헌종 14년(1814) 34세로 돌아가셨으며 사후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이 유의는 흥완군의 양자인 완순군(完順君) 이재완(李載完)이 보관하다가 완순군의 아들 이달용과 그의 아들 이해선 그의 아들 이철주로 물려 내려오다가 숙대 박물관에 기증된 것이다.

의복의 종류 및 수량은 ① 조복 (朝服) 5점, [적초의 2점, 청초의(중단) 3점] ② 제복 (祭服) 2점 (백초의(중단), 흑삼(청초의 대용)) ③ 상복( 겸공복, 단령) 14점(청색생수, 천담모시, 홑모시흰색, 옥색겹, 유록색보문생수, 천홍색, 흑색) ④ 구군복 (具軍服) 3점 [전복(답호):(녹색생수, 군청색항라), 2점 , 내수(동달이) 1점] ⑤ 청철릭(靑天翼) 1점 ⑥ 쾌자(快子) 1점 ⑦ 대 23점(광대 2점, 대대 1점, 세조대 11점, 대9점) ⑧ 후수 (後綏) 1점 ⑨ 흉배 6점(금사쌍학 1쌍, 쌍학 1쌍, 단학 1쌍) ⑩ 상아홀 (象牙笏) 2점 ⑪ 등거리장식 1점 ⑫ 차선 1점(遮扇 1點) ⑬ 청초등롱 2점(靑초燈籠 2點) 계 13종 62점이 있다.

이 유의들은 일률적으로 흥완군의 것으로 지칭하고 있으나, 그 형태로 보아 이것들은 흥완군과 그 대를 이은 완순군의 것으로 대별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관복이 착수로 되어 있다. 광수에서 착수로 변한 것은 개화기에 들어 갑오경장(高宗 31年, 1894)이후에 이루어진 의제개혁에 의해서이다. 따라서 이 시기는 흥완군은 고인이 된지 오랜 후이고 완순군이 등용되는 시기였던 것이다. 완순군은 철종 5년(1855)에 태어나서 광무 3년(1899)에는 궁내부대신(宮內部大臣)을 지낸바 있으며 1923년에 작고하였다.

이 유의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조복에 있어 청초의(중단) 앞·뒤에 상(裳)을 부착시켰으며, 국말에 청초의를 대신한 흑삼은 단 사이에 백선을 가늘게 둘렀고 직령 깃 위에 방심곡령을 부착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상복(常服)인 단령에서 보면 광수와 착수가 있는 가운데 「무」가 뒤로 접혀져 고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양 옆이 터져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말엽의 주의(周衣)의 「무」와 같이 앞·뒤가 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고름은 긴 고름2개 짧은 겉고름 1개가 있어, 긴 고름 위의 것과 겉감 밑의 것은 안감으로 하여 겉감의 겉고름과 맺었을 때 색의 조화를 이루게 해야하지만, 이 의복에는 긴 고름 하나와 겉고름 하나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대(帶) 가운데에는 저포대 2개가 있는데 이것은 국상 때 사용한 것이라고 본다. 띠를 모시로 싸서 만들고 그 위에 사각형과 정엽형(正葉形)을 나무로 만들어 모시로 싸서 붙여 띠돈으로 삼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유의는 개화기의 관복 변천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동시에 그 다양한 형태와 다양한 색상 등이 당시의 복식연구에 크게 기여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구군복

천담 모시 관복

자청색보문생수 관복

군청색보문생수 관복

제복

백초의

흑삼

청철릭

동달이

쾌자

천홍단령

흑단령

조복

조복

적초의

군청색항라 전복

대대

세조대

상아홀

후수

금사쌍학 흉배

단학 흉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