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 제120호 청풍부원군 상여

오늘의 쉼터 2008. 5. 1. 08:08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120호
명     칭청풍부원군상여(淸風府院君喪輿)
분     류 유물 / 생활공예/ 목공예/ 가구류
수량/면적 1습
지 정 일 1982.08.07
소 재 지 강원 춘천시  석사동 27-1 국립춘천박물관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국립춘천박물관

일반설명

청풍부원군 김우명(金佑明)의 초상때 나라에서 하사하여 사용하였던 상여(喪輿)이다. 청풍부원군은 대동법을 실시한 ‘김육’의 둘째 아들로서 본관이 청풍(淸風)이며 현종의 장인이다.

상여(喪輿)는 시신을 장지까지 운반하던 기구이다. 긴 멜대를 중심으로 한 기본 틀 위에 관을 싣는 몸체를 조성하고 맨 위에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밝은 천을 넓게 펼친 모습이다. 몸체에는 봉황머리와 용이 정교하게 조각되고, 검은 천 위에 색띠와 술을 늘어뜨렸는데 망자의 명복을 빌고 슬픔을 덜려는 의미로 보여진다.

요여(腰輿)는 혼백과 죽은 이의 이름을 적은 위패를 모셔 나르는 작은 가마이다. 긴 멜대 위에 사각형의 방처럼 생긴 몸체를 얹고 맨 위에 네 개의 지붕선이 표시된 반구형의 지붕을 올렸다.

명정대(銘旌帶)는 붉은 천에 청풍부원군의 신분을 밝히기 위한 깃발로서 상여의 오른쪽에 세워두었다가 시신을 운반할 때 영구 앞에 서서 행차를 표시하고 길잡이 역할을 한다.

만장대(輓章帶)는 망자를 애도한 글을 적은 깃발로 명정의 뒤쪽으로 배치된다.

조선 숙종대에 만들어진 이 상여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상여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모양이 잘 보존되어 있어 당시 궁중에서 쓰던 상여인 ‘대여(大輿)’의 구조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전문설명


청풍부원군 상여는 상여(喪輿), 요여(腰輿), 명정대(銘旌帶)등의 일습이 보존되어 있다. 대동법을 시행한 김육(金堉)의 아들 우명(佑明)(1619∼1675)이 사거하였을 때 향리로 운구하기 위하여 나라에서 하사하였던 것들이다. 그 후로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다가 현존하는 최고의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새로 상여막을 지어 상설전시 하고 마을사람들은 따로 상여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김우명은 딸을 세자빈으로 입궁시켰는데 현종이 1659년에 즉위하자 국구로 청풍부원군에 봉해졌다. 그가 죽자 숙종은 장례를 후하게 지내게 하였고 운구할 상여를 하사하였다. 상여를 뗏목에 싣고 향리로 가기 위하여 한강을 역류하던중 어떠한 이유로 지금의 안보리에 장지를 정하게 되어 상여도 묘막에 보존하게 되었다.

상여는 조립하여 사용하도록 하였고, 장강채에 연초대 얹은 방식은 다른 것들과 같다. 장강은 채가 긴것과 짧은 것의 두가지가 있는데 짧은 것은 스물여덟명이, 긴 것은 설흔여섯명이 상두군으로 들어서게 하였으며, 옛것의 길이는 약 4.5m 정도이다. 영구를 안치할 자리에 연초대를 설치하는데 장강의 중간 부분에 위치한다. 그 길이는 약 2m이며 폭은 80㎝정도이다. 연초대는 가는 나무오리대인데 울거미에 횡대들이 건너가 있어 영구가 여기에 올라 앉게 된다. 이 울거미에 높이 88㎝가량의 설대를 세운다. 역시 가는 나무오리로 단단하여 한쪽 줄에 세 대씩 간격을 벌려 꽂아 세운다. 그리고 상대의 울거미를 내려 꽂아서 고정시키면 상여의 기본골격이 형성된다. 네귀퉁이 설대에 조각하고 채색한 봉두(鳳頭)를 각각 줄에 매어 고정시킨다. 이들 봉두의 부리로부터는 장엄하게 매듭진 유소(流蘇)를 땅에 끌릴만큼 길게 늘여뜨린다. 상대에 의지하고 황룡과 청룡을 새긴 용수판을 얹는다. 이것은 반월형이며 용수를 새기고 채색을 하였다.

이 상여의 경우에는 경공장(京工匠) 각수(刻手)들의 뛰어난 솜씨가 이들 조각품에 잘 발휘되어 있다. 용수판에는 세가닥 나무오리를 길게 건너질러 고정시키게 장식되어 있다. 홈대에 끼워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정상부에 채운(彩雲)속에서 슬며시 고개를 내민 용두가 조각된 굵직한 마루대를 내려 꽂는다. 조립된 각 부재들이 이것을 끼움으로 해서 완전히 고착되도록 하는 기능까지를 가졌다. 마루대 중간에 사자를 탄 동방삭(東方朔)이 앉았다. 삼천갑자를 살다 죽은 선인 동방삭이 혼백을 안내하여 저세상 좋은 곳으로 안내한다는 의미가 담겨진 표현이다. 신선이 안내할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 이 상여에 계시니 "사귀들이여 물러나라 어서 좋은데로 모셔가야겠다"고 한다면 고인을 떠나보내는 후손들의 마음은 그만큼 안심이 될 것이다. 동방삭이가 바라다 보는 쪽이 상여가 전진해나갈 앞쪽이 된다. 황룡의 용수판이 앞쪽에 있으면 망인이 성인 남자임을 의미하고 청용판이 앞에 있으면 여자가 상여의 주인임을 알린다. 현장(玄帳)의 검은 장막으로 덮으면 보개가 완성된다. 보개의 둘레에 서매(西枚)로 구조한 길이 2m가량의 운궁판(雲宮板)을 설치하여 장엄한다. 운궁판의 고정은 봉황의 머리를 새긴 산지를 꽂는데 부리에 고리를 걸고 역시 아름다운 매듭의 유소를 늘어뜨린다. 흑포(黑布)인 유막을 전체로 친 뒤에 요소마다에 색포를 늘어뜨린다. 이 상여의 색포는 세월이 오래됨에 따라 색이 많이 바랬고 끝동에 단 게블이 헐어서 새것처럼 상큼하지 못하다. 연초대에 의지하고 아름답게 꾸민 난간을 두르고 앙장(仰帳)대 세우고 흰 깁에 검은색 전을 두른 구름차일만 치면 상여는 완성된다. 요령 잡고 인로(引路)할 상두군이 올라설 자리를 마련하고 어깨에 맬 채를 끼우는 일들은 다른 상여와 같다.




청풍부원군상여

요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