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는 삼국시대 때부터 농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농업이 산업의 근간을 이루던 전근대 사회 동안 풍요를 누리던 지역이었고, 고려왕조부터 조선왕조까지 약 1,000년 동안 목(牧)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한 전라도의 대표적 큰 읍치이었으며, 현존하는 관아 건물과 향교 건물들이 그에 상당한 권위를 보여주고 있어 상당한 가치가 있음.
나주 관아는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성읍지, 여지도, 나주목지도를 비롯한 고지도 등에서 위치와 건물 구성을 비교적 자세히 알 수 있으며. 객사 등의 발굴 성과와 옛 사료들을 토대로 조선시대 지방통치 중심지의 구조를 파악하고자 할 때, 현존하는 관아 건물이 좌표축의 구실을 하는 중요한 가치가 있음.
나주 향교는 평지에 들어선 전묘후학의 배치형태를 띠고 있는 전형적인 예이며, 특히 보물 제394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성전은 그 규모가 대단히 웅장할 뿐 아니라 양식, 격식이 뛰어나 조선후기 향교건축을 대표할 수 있어 건축학적 가치가 있음. 또한 나주향교는 조선시대 교육시설의 규모를 따지면 성균관 다음이라고까지 지칭될 정도로 규모가 클 뿐 아니라 교육과 제사의 고유기능을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
위와 같은 점에서 관아와 향교의 보존가치가 매우 크다고 판단되어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하고자 함.
나주목지도 나주목지도 상세 나주목 관아와 향교 - 전경 나주목 관아와 향교 - 객사 금성관 나주목 관아와 향교 - 금성관 내부 나주목 관아와 향교 - 향교 전경 나주목 관아와 향교 - 향교 대성전과 양측 동·서무 나주목 관아와 향교 - 향교 전도(자료: 나주 향교지) 내삼문 측면 내삼문 대성전 돌담 동무 동익헌 동재 동재뒷쪽 명륜당 비석군 서무 서익헌 서재 연목 외삼문 측면과 비 외삼문 우측기단 좌측 소맷돌 충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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