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454호 김해 양동리 고분군

오늘의 쉼터 2008. 2. 24. 00:11



종     목 사적  제454호
명     칭김해양동리고분군(金海良洞里古墳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고분군
수량/면적 47,670㎡
지 정 일 2004.07.24
소 재 지 경남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산3번지 등
시     대가야
소 유 자김해시
관 리 자김해시

일반설명

김해 양동리 고분군은 기원전 2세기대로부터 기원 5세기대에 걸쳐 형성된 고분군으로서, 발굴조사 결과 다양한 묘제와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가야 국가 형성기로부터 발전기의 역사적 사실을 한 눈에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유적은 일찍부터 김해지역 중심고분유적의 하나로 주목받은 곳으로서 1984년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이래 1990∼1996년간 동의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4차에 걸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옹관묘 등 548기의 유구와 토기와 청동기, 철기 등 5,100여점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확인된 유구는 묘제의 변천과정과 연대 규명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이며, 출토된 각종 유물은 시기별 가야문화의 실상과 변화상을 한 눈에 보여줄 뿐만 아니라 종래의 연구에서 부족했던 많은 자료를 보완하여 국제성을 띤 가야문화의 세련된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러한 발굴성과를 통하여 가야사회의 문화와 국가·사회적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어 구야국(狗耶國) 또는 본가야(本伽倻)가 활발한 해상활동을 통하여 번성한 해양왕국(海洋王國)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2세기 후반에서 4세기까지가 가야철(伽倻鐵)의 전성기로서 해상활동도 가장 활발하여 외래문물도 해로를 통해 직접 유입되었던 가야시대의 번성기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철생산이 가야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철시장의 상실로 인한 가치 하락이 가야쇠퇴의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으며, 새롭게 부상한 신라나 백제의 압박으로 점차 쇠망하였다는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이 김해양동리고분군은 그 발굴성과를 통해 각 시기별 가야문물의 진수를 보여줄 뿐 아니라 낙동강 하류지역 가야사회의 성장과 그 국가적 성격을 밝히는 귀중한 유적이라 할 것이다.




김해양동리고분군

김해 양동리 고분군 전경

90호분 출토 동검

427호분 출토유물(세형동검, 동경)

382호분 출토유물

김해양동리고분군유적발굴전경

김해양동리고분군유적발굴부분

제212호분

제212호분출토유물

제340호분

양동리식동경

제50호분출토유개고배

제78호분출토갑주

제142호분출토환두대도

제235호분유물노출상태

제304호분출토유물

제304호분출토유물

제322호분출토유명동정

김해 양동리 고분군 전경1

김해 양동리 고분군 전경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