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인 1931년에 준공된 옛 경성제국대학의 본관으로, 1945년 이후 서울대학교 본관으로 사용되었다. 서울대학교가 1972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뒤 문화예술진흥원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경성제국대학은 3·1 독립운동이 일어난 후 이상재 선생을 대표로 한 조선민립대학 기성회가 결성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일제가 경성제국대학령을 공포하고 예과(豫科)를 모집하여 1926년 법문학부와 의학부를 개설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본관은 벽돌로 쌓은 3층 건물로써 우리나라 건축계의 선구자인 박길룡씨가 설계했고, 공사는 일본인 회사 미야까와구미가 맡았다. 평면은 장방형이며 지붕의 모습은 세련되고 우아하다.
건물의 일부 출입구 등이 고전풍의 아치를 지니고 있지만, 대체로 과거 건물의 양식을 모방하지 않으려는 근대적 성격의 건물로, 종로구에 있던 서울대학교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건물이다.
전문설명
1930∼31년 사이에 지어진 이 건물은 건평 1, 623㎡의 3층 벽돌조 건물로서 우리나라 건축계의 선구자인 박길룡< 朴吉龍 > 씨의 작품이다. 이것은 일부 출입구 등에 고전풍의 아치를 지니고 있으나, 대체로 이전의 양식주의< 樣式主義 >(과거 건물의 양식을 모방하는 주의)를 배격하는 근대 여명기적< 黎明期的 > 건축이다. 서울대학교가 1972년 현재의 관악교사< 冠岳校舍 >로 옮길 때까지 대학본부로 쓰였으며, 이 구내에 있던 서울대학교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건물이다.
구 서울대학교 본관 전경 뒷면 출입구 뒷편 출입구 배면 원경 배면 전경 배면 창호 본관 전경 우측 전경 주 출입구 좌측 포치 측면 전경 현관 석물 구 서울대학교 본관 구 서울대학교 본관 구 서울대학교 본관 구 서울대학교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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