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185호 경주 신무왕릉

오늘의 쉼터 2008. 2. 18. 22:23

 

종     목

사적  제185호
명     칭경주 신무왕릉 (慶州 神武王陵)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고대
수량/면적 36,618㎡
지 정 일 1969.08.27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동방동 660
시     대통일신라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경주시

일반설명

신라 제45대 신무왕(재위 839)의 무덤이다.

본명은 김우징이고 희강왕의 사촌동생이다. 839년 4월에 청해진대사 장보고의 도움을 받아 민애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3개월에 병으로 죽었다.

높이 3.4m, 지름 15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주변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이 죽자 이름을 신무라 하고 제형산 서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하나, 이 무덤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전문설명


신문왕릉(神文王陵)의 동남쪽에 있으며 얕은 구릉의 경사면에 조성되어 있다.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서 지름 15m, 높이 3.4m이다. 일반 민묘보다 규모가 클 뿐 다른 특징이 없다. 봉분만 남아 있을 뿐 호석(護石)의 일단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장식물도 없다.

신라 제45대 신무왕(神武王)(재위(在位) 839)은 본명이 김우징(金祐徵)이고, 상대등 균정(上大等 均貞)의 아들이며, 희강왕(僖康王)의 사촌동생이다. 신라 말기에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왕위쟁탈전이 심해져서 부친인 균정(均貞)을 받들어 왕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839년 정월에 청해진대사 장보고(淸海鎭大使 張保皐)의 도움으로 민애왕(閔哀王)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즉위한지 7개월만에 죽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왕(王)이 죽자 시호(諡號)를 신무(神武)라 하고, 제형산(弟兄山) 서북쪽에 장사지냈다고 전하는데, 이 고분을 가리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경주 신무왕릉 전경

경주 신무왕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