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심동신(1824∼?)이 입던 금관조복으로, 조복이란 문신, 무신들이 동지와 설날, 그리고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또는 종묘와 사직에 제사지낼 때 입었던 옷으로,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적초의를 입었다. 심동신이 참판 당시에 입던 유품으로 금관, 적초의, 적상, 청초의(청초중단), 운학금환수, 패옥, 서대, 홀 등이 있다.
금관은 5개의 금색선이 붙여진 오량관으로 나무비녀로 고정시키게 되어있다. 조복인 적초의는 날씨가 더울 때 쓰는 항라로 만든 붉은색의 홑옷인데, 깃은 직선이고 넓은 동정이 달렸으며 소매가 넓고 양 옆이 트였다. 청초의는 조복인 적초의 바로 안에 입는 옷으로 중단이라고 하는데, 청색 명주로 된 홑옷이다. 직선으로 된 깃에 동정이 있고 소맷부리와 도련 등에 검은선이 둘러져 있다. 적상는 조복인 적초의와 같이 항라로 만들었으며, 전체를 잔주름으로 처리하였고 앞 3폭, 뒤 4폭의 양식으로 앞면이 뒷면보다 좁게 되어 있다. 운학금환수는 후수를 말하는데 큰대와 함께 달려 있으며 붉은색 바탕에 파란색, 노란색, 흰색의 세가지 색으로 구름과 학을 수놓았다. 윗부분 양쪽에는 금환 2개가 달려있다. 패옥은 조복을 입을 때 허리 양 옆에 하나씩 달아 늘어뜨리던 장신구로, 한쌍이 온전히 남아있으며 위에는 놋쇠로 된 고리가 달려있다. 서대는 조복에 쓰던 허리띠이며, 홀은 조복을 입을 때 갖추어 양손에 쥐어 예를 표시하던 물건인데, 상아로 만들었다.
이 금관조복은 1890년대를 전후한 구한말의 유품으로 추정되며, 부속품까지 양호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어 복식사적 가치가 많다.
전문설명
심동신(沈東臣)은 순조24년(純祖24年)(1824) 서울태생으로 본관(本貫)은 청송(靑松), 자(字)는 사경(士敬)이다. 헌종말(憲宗末)∼철종원년(哲宗元年)(1850)에 증광(增廣)에 나아가 을과(乙科)에 급제(及第)하였는데 이 유물은 참판(參判)으로 있었을 때 착용(着用)하였던 것으로 금관(金冠), 조복(朝服), 적상(赤裳), 청초의(靑초衣), 운학금환완(雲鶴金環緩), 패옥(佩玉), 서대(犀帶), 홀(笏) 등이 남아 있다. 이는 19세기말(末)의 유품(遺品)으로서 그 내용(內容)은 다음과 같다.
(1) 금관(金冠) 1구(具) 금관은 오량관(五梁冠)으로 되어 있는데 뒤에는 술 끈으로 매게 되면서 두개의 목잠(木簪)이 꽂히게 되어 있다.
(2) 조복(朝服) 1착(着) 조복은 홍색(紅色) 구족항라(九足亢羅)로 만들어져 있고 모양은 소매가 넓고 좌우(左右) 옆이 트이고 깃 도련 소매 끝에는 백선(白線)을 가늘게 넣으면서 흑색선(黑色線)이 3.4cm, 넓이로 둘러져 있다.
(3) 적상(赤裳) 1착(着) 적상은 조복(朝服)과 같은 천으로 잘게 주름 잡아 흑색선(黑色線)을 두르고 위에는 백주(白紬)로 허리를 달아 옆에서 매게 되어 있다. 입은 모양은 앞뒤 따로 분리되어 있다.
(4) 청초의(靑초衣) 1착(着) 청초의는 조복(朝服) 바로 밑에 입는 옷으로 중단(中單)이라고도 한다. 이 옷은 청색(靑色) 명주(明紬)로 되어 있고 모양은 소매가 넓고 두루막 비슷하면서 깃 도련 소매끝에는 3.4cm 넓이의 흑색수(黑色綬)가 둘러져 있다.
(5) 운학금환수(雲鶴金環綬) 1착(着) 운학금환수는 조복(朝服) 뒤에 다는 후수(後綬)인데 이것은 홍전(紅氈)에 청(靑), 황(黃), 백(白), 삼색(三色)으로 운학(雲鶴)을 수(繡)놓고 상부(上部) 양(兩)쪽에는 금환(金環) 두개가 달려 있다. 두개 중 하나는 6·25 동란시(動亂時) 분실(紛失)되고 지금은 하나만 남아 있다. 후수(後綬) 밑에는 청색(靑色)의 망수(網綬)가 드리워져 있고 위에는 백주(白紬)로 된 허리에 좌우(左右) 옆에 홍색(紅色)의 소수(小綬)가 달려 있다.
(6) 패옥(佩玉) 1구(具)(5련(連)) 패옥은 파청옥(播靑玉)이면서 한쌍으로 되어 있다. 청색(靑色) 유문사(有紋紗) 주머니 속에는 다섯줄로 된 수술에 연결되어 있고 위에는 놋으로 된 고리가 달려 있다.
(7) 서대(犀帶) 1구(具) 서대는 물소뿔로 된 띠돈이 달리고 안은 청색(靑色) 모초로 싼 각대(角帶)이다.
(8) 홀(笏) 1개(個) 홀은 상아홀(象牙笏)이다. 백포말(白布襪)과 흑피혜(黑皮鞋)는 제외(除外)된 상태에서 1948년 7대손부(7代孫婦)로부터 석주선씨(石宙善氏)가 인수(引受)받았다 한다.
이상의 본건(本件)은 한말(韓末) 것이기는 하지만 완전(完全)히 갖추어진 조복(朝服)으로 특기(特記)할 만하다. 그러므로 이 의제(衣制)는 고종32년(高宗32年)(1895) 문관(文官)의 복장식(服裝式)에도·조복(朝服), 제복(祭服)은 구례(舊例)대로 입게 하고,·대례복(大禮服)은 흑단령(黑團領), 사모(紗帽)·품대(品帶), 화자(靴子) ……·소례복(小禮服)은 흑단령(黑團領), 용수포(容袖袍), 사모(紗帽), 속대(束帶), 화자(靴子) ……·통상복색(通常服色)은 주의(周衣), 사대(絲帶) …로 나타나 있는 바, 이 전후(前後)의 복식(服飾)으로 추정(推定)된다.

심동신금관조복

심동신 금관조복 
심동신 금관조복 
심동신 금관조복 중 운학금환완 
심동신 금관조복 중 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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