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초기 이 부근에서 많이 만들어진 일련의 커다란 불상들과 양식적 특징을 같이하는 석불입상이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말 마의태자가 나라의 멸망을 비통하게 여기며 이곳까지 와서 불상을 만들고 개골산으로 들어갔으며, 그 여동생은 덕주사마애불(보물 제406호)을 만들었다고 한다.
모두 5개의 돌을 이용하여 불상을 만들고 1개의 얇은 돌로써 갓을 삼았다. 둥근 얼굴에 활모양의 눈썹, 긴 살구씨 모양의 눈, 넓적한 코, 두터운 입술 등은 고려 초기 커다란 불상의 지방화된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신체는 단순한 옷주름의 표현이라든가 구슬같은 것을 잡고 있는 손의 묘사 등에서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간략함을 느낄 수 있다.
이 불상의 대담하고 거대한 모습으로 보아 새로 일어난 국력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전문설명 이 불상은 고려시대(高麗時代) 초기(初期) 이 부근에서 다수 조성된 일련의 거불(巨佛)들과 양식적(樣式的) 특징을 같이하는 석불입상(石佛立像) 이다.
모두 5매의 돌을 이용하여 불상을 조성하고 1매의 얇은 돌로써 갓을 삼았다. 둥근 얼굴에 활 모양의 눈썹, 긴 행인형(杏仁形)의 눈, 넓적한 코, 두터운 입술 등은 고려 초기 거불(巨佛)의 지방화(地方化)된 불상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신체는 소략한 옷주름의 표현이라든가 앞으로 모아서 구슬 같은 것을 잡고 있는 두 손의 치졸한 묘사 등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간략화하고 괴체화(塊體化)한 느낌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주실 벽면 감과 봉안된 조각 석조여래입상 얼굴 부분 석조여래입상 상반신(우측면 향) 석조여래입상 머리 부분 및 천개(좌측면 향)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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