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백자 항아리로, 크기는 높이 54.8㎝, 아라리 지름 19.2㎝, 밑 지름 18㎝이다.
아가리 부분은 수직으로 낮게 있으며, 부드럽게 팽창하여 어깨부에서 팽배되었다가 서서히 좁아진 후, 몸통 아랫부분에서 약간 벌어져 바닥면에 이른다.
항아리의 양감이 풍부하고 아랫부분이 좁아서 보기에 준수하며, 몸통 가운데에 위·아래를 따로 만들어 붙인 흔적이 있다. 몸통 윗부분의 4곳에 푸른색 안료로 4개의 반원를 연결시켜 만든 마름모 형태의 꽃 창을 큼직하게 그린 다음, 그 속에 산수문과 화조석문을 교대로 그려 넣었다.
각각의 꽃 창 안에 도안화된 ‘富’자를 넣어 사다리꼴로 연결시켜 놓았으며, 꽃 창 사이의 위·아래 4곳에도 역시 도안화된 ‘壽’자와, ‘疆’자가 들어있는 원이 있다. 유약은 투명하고 광택이 좋은 백자유로 전면에 고르게 칠해졌고, 표면의 색조는 엷은 회백색이다.
형태가 아름답고 푸른색의 청화 안료로 그린 사실적인 문양들이 우수하고 다양하여, 이 무렵 대표적인 백자 항아리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전문설명 구연(口緣)은 수직으로 낮게 서고 거기서 서서히 팽창하여 견부(肩部)에서 팽배되었다가 서서히 좁아진 후 동체최하부(胴體最下部)에서 약간 벌어져 접지면(接地面)에 이르는 입호(立壺) 형식(形式)인데, 항아리의 양감이 풍부하고 하부가 좁아 외견(外見)이 아주 준수하다. 동체(胴體) 상부 (上部) 네 곳에 청화(靑華)로 화창(花窓)을 그리고, 서로 마주보는 곳에 각각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연상(聯想)케 하는 산수문(山水文)과 화조문(花鳥文)을 사실적으로 그려 주문양(主文樣)으로 삼았다. 또 각(各) 화창(花窓)은 내(內)에 도안화(圖案化)된 「부(富)」자(字)가 있는 마름모꼴의 사각형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 화창(花窓)과 화창(花窓) 사이의 상·하(上·下) 네 곳에 역시 내(內)에 도안화(圖案化)된 「수(壽)」·「강(彊)」자(字)가 있는 원(圓)이 있다. 수직으로 선 구연(口緣) 측면(側面)에는 당초문대(唐草文帶)가, 구부(口部)주위에는 커다란 여의두문(如意頭文)과 변형연판문(變形蓮瓣文)이 번갈아 시문되었으며, 동체(胴體) 최하부(最下部)에는 단청(丹靑)에서 응용한 듯한 안상(眼象)과 같은 문양대가 있다. 유약은 전면(全面)에 고르게 시유되었으며 잘 녹아 투명(透明)하며 광택이 있다. 표면색조(表面色調)는 회백색(灰白色)이며 빙열(氷裂)은 없다. 동체(胴體) 중앙(中央)에 상·하(上·下)를 접합시킨 흔적이 있으며 구연(口緣) 한 곳과 굽 여러 곳의 작은 결손(缺損)을 복원수리(復元修理)하였다. 안다리굽으로 접지면에 굵은 모래를 받쳐서 번조(燔造)하였다. 항아리의 형태나 청화(靑華)로 시문된 문양의 내용(內容)과 밝은 발색(發色), 또 종속문양대의 문양 단위가 큰 점, 번조방법(燔造方法) 등으로 보아 18세기경에 경기도(京畿道) 광주(廣州) 관요(官窯) 금사리계(金沙里系)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항아리는 금사리(金沙里) 시기(時期)의 청화백자 (靑華白磁) 입호(立壺)로서 형태가 크고 잘 생겼으며 문양구성도 다양한데 특히 화창내(花窓內)의 산수화조문(山水花鳥文)이 뛰어나다. 이 시기의 청화백자(靑華白磁)는 그 수효가 적고 작은 병류(甁類)가 많은데 이 항아리는 크고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청화문양(靑華文樣)도 뛰어난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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