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인생전략

제 3 計 차도살인(借刀殺人)

오늘의 쉼터 2008. 1. 27. 19:45

 

제3計 차도살인(借刀殺人)- 남의 칼을 빌려 적을 제거하라! -

 

차도(借刀)는 남의 칼을 빌린다는 말이다. 살인(殺人)은 상대방을 제거하는 것이다. 나와 모순관계에 있는 상대방을 제거하는데 내 칼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칼을 빌려서 제거한다는 전술이 차도살인(借刀殺人)의 전술이다.

 

내 손에 흙 안 묻히고 원하는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차도(借刀)’는 수단이고 ‘살인(殺人)’은 목표다. 제거해야 할 대상은 다양하다. 조직의 생존을 위해서 직원을 해고시켜야 할 때도 있고, 반대로 경영자나 관리자를 제거해야 할 때도 있다. 외부적으로는 조직의 생존을 압박하는 상대편을 무너뜨려야 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제거의(殺人) 목표를 실현할 것인가?’이다.

 

 ‘너는 우리 조직의 적이다. 나의 칼을 받아라!’라고 당당하게 칼을 빼어들어 상대방을 베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하수(下手)다. 명분과 폼은 좋을지 몰라도 반드시 후환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주먹으로 상대방을 때리면 내 주먹에 상대방 피가 묻는다. 피를 입에 머금고 상대방에게 뿌리면 내 입부터 더러워진다(含血噴人, 先汚其口).’라는 옛날 말이 있다. 내 손을 직접적으로 거치지 않고 나와 갈등과 모순 관계에 있는 사람을 없앨 수만 있다면 가장 완벽하고 훌륭한 승리다.

 

중국 문화혁명(1968-1978)은 ‘남의 칼을 빌려서 상대방을 제거한다’는 차도살인의 전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당시 자본주의적 요소를 사회주의와 결합하고 개혁과 개방을 통해 중국의 미래를 이끌고자했던 주자파(走資派)가 모택동의 중국식 사회주의 경제의 실패를 계기로 중국의 정권을 잡아가고 있었다.

이 때 유소기(劉小奇)와 등소평(鄧小平)으로 대표되는 개혁파에게 실권을 내주어야 했던 모택동은 차도살인의 계책을 이용한다.

모택동은 당시 국방부장이었던 임표(林彪)와 사인방(四人幇)을 부추기고, 자신을 영웅시하던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힘을 빌려 홍위병으로 변신시킨다.

그리고 이들을 통하여 자신의 노선에 반대하는 반대파를 하나 하나 제거하기 시작한다.

결국 모택동은 자신의 별장에서 한발 짝도 나오지 않고 모순과 갈등 관계에 있는 상대방을 제거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차도살인의 단계적 논리는 이렇다.

 

1단계(문제) : 적의 의도가 우리 조직의 생존에 위협이 된다는 사실이 확실히 밝혀졌다(‘敵已明).

2단계(대안) : 그런데 나를 도와 줄 사람은 아직 방향을 못 잡고 있다(友未定).

3단계(실행) : 이제 그 사람을 끌어다가 적과 싸우게 한다(引友殺敵)

4단계(해결) : 결국 내 힘은 하나도 안 들이고 효과적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不自出力)

이 4단계의 논리를 이해하면 차도살인의 계책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첫째 누가 우리 조직에 위협이 되는가를 분석하라!

둘째 그 위협을 제거할 수 있는 조직과 사람을 찾아라!

셋째 가능한 방법을 통해서 2자와 3자를 싸우게 하라!

넷째 1자인 나는 힘을 안 쓰고 목표를 달성한다.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내 칼을 빼서 상대방을 칠 수도 있고, 나의 우방이이나 상대방과 모순관계에 있는

사람을 이용하여 우회적으로 상대방을 제압할 수도 있다.

 

직원을 해고할 때 리더는 절대로 자신이 직접 해고통보를 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감정적으로 직원을 그만두게 해서도 안 된다.

중간 관리자나 인사관리자에게 그 역할을 담당하게 해야한다. IMF 이후 구조조정에 한창일 때  각 기업마다 앞 다투어 구조조정본부라는 태스크 포스 팀을 만든 것도 차도살인 전술을 활용한 것이다.

유능한 리더는 갈등의 해결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칼은 휘두를 때는 멋있지만 피를 닦을 때는 힘들기 때문이다.

 

 

 차도살인(借刀殺人)  - 병법 삼십육계 (兵法 三十六計)중 제3계

▶ 칼을 빌려 남을 죽인다는 뜻. 적의 실체가 이미 밝혀졌는 데도 동맹군의 태도가 모호할 때는 동맹군을 끌어들여 적을 무찔러야

이쪽의 힘을 아낄 수 있다는 계책.

▶ 공자(孔子)의 제자 자공이 노나라를 돕기 위해 제나라와 오나라를 서로 싸우게 하고 다시 진나라로 가서 오와 싸우도록 했다.

결국 힘이 빠진 오나라는 격파당하고 제나라는 혼란에 처하게 되었으며 진나라는 강국이 되어 노나라의 후견국이 되었다.

남의 힘을 빌어 이렇듯 적을 물리치고 자기의 입장을 지키거나 목적을 달성하는 계책을 '
차도살인'의 계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계책에 의하여 국가의 존망과 안위가 결정된 예는 상당히 많다.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빈번히 사용되고

있으며 방법도 매우 다양하다.

이 경우 '살인' 이 목적이라면 '차도'는 방법이다. 이때 방법은 갖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가 있다. 적의 총체적인 역량일 수도 있고

혹은 재물일 수도 있으며 때로 상호간에 갈등을 조성, 증폭시키는 계략일 수도 있다.

▶ 조조가 예형을 형주 유표에게 보내었으나, 유표도 예형을 황조에게 보내 결국 황조가 예형을 죽였다.(이문열 3-14)

삼국 시대 예형이 조조를 비방하자 조조가 공융에게 말했다.

"예형은 소인으로 예의를 모른다. 그를 죽이는 것은 참새나 쥐를 죽이는 것보다 쉽다. 그러나 그에게는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으니, 그를 죽이면 틀림없이 나에게 사람을 포용하는 도량이 없다는 평판이 나게 될 것이다.

형주의 유경승은 생각이 좁고 성질이 급한 자이니, 그를 시키면 예형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조조는 즉시 예형을 강제로 말에 태워 기병 두 사람을 호위시켜 유경승에게 보냈다.

그후 과연 유경승의 부장 황조가 거만한 예형을 죽여 버리고 말았다.

▶ 서기 208년 11월초, 조조(曹操)의 부대가 적벽산 맞은편 언덕에 도착하여 대군이 조림(鳥林)에서 진을쳤다.

이때 동오(東吳)의 도독인 주유(周瑜)도 적벽산에 도착하여 조조의 군대와 강을 맞대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조조군이 언뜻 남쪽에 있는 오(吳)나라 군대를 보니 그수가 많지않았 점령하기에 쉽겠구나하고 생각하고 정면공격을 하려고 몇척의

전함을 보내어 탐색을 명하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조조군은 참패하여 북쪽으로 돌아왔다.
조조는 형주(荊州) 장수인 채모(蔡瑁)와 장윤(張允)을 문책하며 말하길 "어찌하여 동오의 병사가 적은데 오히려 당했는가?"하니

채모가 답하길 "형주의 수군은 오랫동안 훈련을 하지못했고 청주(靑州)와 제주(除州)의 병사들은 원래 수군에 익숙치않아

그렇사옵니다."했다.
채모는 또 "수군과 함께 10여일을 훈련하기만하면 청주,제주의 병사들 능히 수전(水戰)을 배울 수 있습니다."
조조는 일리가 있다고 느끼고 채모,장윤 두사람을 수군도독(水軍都督)으로 임명하여 수군을 훈련시키도록 했다.
채모와 장윤은 밤낮없이 청주와 제주병사들에게 수전을 훈련시켰다.

주유와 몇 수장들이 첩자로부터 그러한 상황과 수군도독이 채모와 장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크게 놀라며

"그 두사람은 오랫동안 강동(江東)에 살아서 수전을 잘 알고있는데 먼저 이 두사람을 제거할 계획을 세워야 겠군."

몇일뒤 조조의 참모인 장간(蔣干)이 조조에게 말하기를 "저는 주유의 친구이니 제가가서 투항하도록 권하여 보도록하겠습니다"했다. 조조는 비밀리에 그를 주유에게 보내 투항할 것을 권해보기로 했다.
장간은 주유를 만나기위해 강을 건넜다.
주유가 장간을 맞으면서 "여보게 어서오게. 강을 건너온 것을 보니 조조의 세객(說客)으로 왔는가?"라고 말하니 장간은

"우리가 헤어진지가 얼만가? 그리워 찾아왔는데 조조의 세객이라니?"하고 둘러댄다.

주유가 장간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듯한 웃음을 지었다.

주유는 정성스럽게 장간이 그의 군사진영에서 머물도록하고 그와함께 술을마시며 한담을 나누었다.

다음날 그는 장간을 데리고 군사진영을 둘러보게하고 일부러 그에게 창고와 무기, 군량미, 기타군용물자 등을 보여주며 전쟁을

위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음을 과시했다.
두 사람은 돌아온 후 술을 마시고 한담을 나누었다.
주유는 호화스러운 옷과 금은보화 등을 장간에게 보여주며 한바탕 자랑을 하였다. 그날밤 두사람은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한참이 지나 주유는 아주 만취한 척하며 장간의 손을 잡고는 자기와 같은 침대에서 자기를 청했다. 주유는 옷을 벗어놓고 구토를

그칠줄 몰랐으나 장간은 오히려 아주 정신이 맑은 상태여서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야심이 되었을 때 장간은 책상위에 서류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몰래 훔쳐보았다.

그것은 주유에게 온 편지로 '채모,장윤 드림'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는 깜짝놀라며 몰래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편지는 "저희들이 조조에게 투항한 것은 높은 벼슬과 녹봉을 위해서가 아니라 형세에 쫓겨서입니다. 때를기다려 조조의 목을 쳐

장군께 바치겠습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니..."라는 내용이었다.

장간은 '채모와 장윤이 동오(東吳)와 내통을 하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미 만취가 되어 잠이든 주유는 "여보게, 몇일 더 묵고 가게. 조금있으면 내가 조조의 목을 보여줄테니..."라고 잠꼬대를 했다.

얼마나 되었을까 누가 침실로 들어오더니 "장군, 장군!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하고 주유를 깨웠다.

주유는 잠이 섞인 목소리로 "무슨 일이냐?"하고 물으며 침실 바깥으로 나갔다.

그 사람은 "채모와 장윤이 일이 아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전갈이..."하고 주유에게 보고했다.

장간은 이를 엿들었지만 뒷부분은 말소리가 작아 분명하게 듣지못했다. 보고를 들은 주유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이 밝아올 무렵 장간은 몰래 강을 건너 조조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장윤, 채모의 편지내용과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을 소상하게 조조에게 아뢰자 조조는 대노하며 장윤과 채모를 잡들였다.
극도로 흥분한 조조는 즉시 그들의 목을 베도록 명령하였다.
나중에서야 조조는 자신이 주유의 계략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