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177호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粉靑沙器 印花菊花文 胎壺)

오늘의 쉼터 2008. 1. 27. 11:52


종     목 국보  제177호
명     칭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粉靑沙器 印花菊花文 胎壺)
분     류 유물 / 생활공예/ 토도자공예/ 분청
수량/면적 2개
지 정 일 1974.07.09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안암동 1 고려대학교박물관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고려대학교
관 리 자고려대학교

일반설명

분청사기로 만든 태(胎) 항아리로, 1970년 고려대학교 구내에서 건축공사를 하던 중에 발견되었다. 태 항아리는 주로 왕실에서 태를 담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내항아리와 외항아리로 되어 있다.

내·외 항아리 각각에 뚜껑이 있으며, 높이 26.5㎝, 입지름 9㎝, 바닥지름 9.5㎝인 내항아리와 높이 42.8㎝, 입지름 26.5㎝, 밑지름 27.6㎝인 외항아리로 되어 있다. 외항아리 안에는 흙이 3분의 2쯤 차 있고, 내항아리는 짚 망태기에 넣어져 외항아리에 담겨 있었다.

내항아리 안에는 태(胎)와 태를 싸았던 것으로 짐작되는 것이 썩어 변질된 채로 남아 있으며 엽전 2닢이 들어 있었다. 외항아리는 풍만하고 내항아리는 홀쭉하다. 외항아리의 무늬에는 어깨에서부터 卍자무늬, 연꽃무늬, 국화무늬로 둘렀으며, 몸통 전체에 국화무늬를 찍어 놓았고, 몸통 아래부분에도 어깨부위와 같은 연꽃 무늬로 띠를 둘렀다. 내항아리는 뚜껑에 거북등 모양의 6각형 무늬가 있으며, 몸통에는 국화 무늬가 가득 차 있다.

이 항아리들은 15세기 중엽 인화문(印花文) 분청사기의 가장 세련된 작품이다.


전문설명


각각 뚜껑이 있는 내호(內壺)와 외호(外壺)로 되어 있으며, 외호 안에는 고운 흙이 3분의 2쯤 차 있고, 가운데에 내호가 고운 흙 속에 4분의 3쯤 묻혀 있었다.

또한 내호는 고운 새끼끈으로 망태기를 만들어 외호 안에 넣었던 것 같다. 외호 안에는 고운 흙과 내호를 넣었던 구멍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끈으로 만든 망태기가 그대로 박혀 있다. 내호 안에는 태(胎)와 태를 쌌던 것으로 짐작되는 것이 썩고 변질된 채로 남아 있으며, 엽전(葉錢) 2잎이 들어 있다. 또 내호의 주둥이로부터 어깨에 이르기까지 썩은 망태기가 그대로 걸쳐진 채 남아 있다.

안팎 항아리를 갖추고 있는 이 항아리는, 외호는 풍만하고 내호는 홀쭉한데, 외호 뚜껑 꼭지에 구멍이 뚫려 있다.

외호의 문양(文樣)은 뚜껑의 낮은 꼭지를 중심으로 국화판문대(菊花瓣文帶)·연판문대(蓮瓣文帶)·만자문대(卍字文帶)가 차례로 주둥이까지 배치되어 있다. 몸통에는 어깨의 연판문(蓮瓣文)을 중심으로 아래위에 만(卍)자문과 국화문대를 두고 몸통에는 국화판을 전면(全面)에 인화(印花)해 놓았으며, 위에는 우점문(雨點文)을 지문(地文)으로 한 복사문이 있고, 바닥에는 연판문대가 있다.

내호는 뚜껑에 2줄의 귀갑문대(龜甲文帶)가 있고, 몸통에는 국화판문이 가득 차 있다. 유약(釉藥)은 담청(淡靑)을 머금은 회백(灰白)의 전형적인 분청유(粉靑釉)이며, 내호의 유약은 반투명으로 광택이 없으며, 뿌연 느낌이 있다.

1970년 고려대학교(高麗大學校) 구내에서 건축공사를 하던 중 발견되었으며, 이 항아리를 넣었던 석함(石函)도 남아 있다.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