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보고 스리랑카(Sri Lanka)
광기로 지어진 왕궁 요새
시기리야 옛 왕조의 기품 을 간직한 古都 캔디 국민들의 자존심 국보1 호 불치사 역사를 찾아 내륙 을 파고드는 길손 에게 열대의 정열을 품 은 수려한 수풀 순박한 눈망울의 현지인들은 벗이된다 스리랑카가 찬란하게 빛나는 건 그 때문이다 478년 스리랑카의 성군 다투세나는 왕위를 찬탈하려는 큰아들 카샤파에게 죽음을 당한다.
카샤파는 후처 소생이었다. 왕비가 낳은 동생 목갈란에게 왕위가 넘어갈 것을 염려하다 부친을 해친 것이다. 권좌에 대한 집착으로 카샤파는 재임 18년 중 7년을 쏟아부어 180m 높이의 바위산에 그만의 왕궁을 만들었다. 깎아지른 듯한 요새에서 불안한 11년을 보낸 카샤파는 군사를 일으켜 복수하러 온 목갈란에게 패해 결국 자살을 택한다. 이것이 고독하고도 슬픈 바위 왕궁 ‘시기리야 록’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사람의 접근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요새답게 시기리야 록은 관광객에게 호락호락 그 자태를 드러내지 않는다. 시기리야 록을 둘러싼 해자를 건너 복원작업이 진행 중인 정원을 지나면 여행자는 거대한 바위를 맞닥뜨린다. 작렬하는 열대의 태양이 어지러운 아지랑이를 피워내는 바위산을 반쯤 올라가야 사자 발 모양을 한 궁전 입구를 만날 수 있다.
난이도는 높아진다. 하지만 여행자의 수고로움은 곧 보상받는다. 절벽에 아슬아슬 매달린 원통 철제계단을 숨죽이고 돌아 오르니 농염한 자태의 고대 여인들이 마중을 나와 있다. 바위면에 새겨진 프레스코화 ‘시기리야의 여인들’이다. 카샤파가 자신이 해한 부친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그렸다는 이 벽화는 원래 500여명이었지만 현재 남은 것은 23명뿐이다.
정상까지는 수직처럼 느껴지는 절벽이 가로막는다. 10여분을 부지런히 오르자 평평한 정상이 나타난다. 각종 연회장 수영장 건물의 흔적이 남아 1500여년 전 역사를 증언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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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iriya: Mount of Remembrance"Long ago and far away ris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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