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137호 대구 비산동출토 동기류(大邱飛山洞出土銅器類)

오늘의 쉼터 2008. 1. 26. 20:31


종     목 국보  제137-1호
명     칭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검 및 칼집 부속

(大邱 飛山洞 靑銅器一括-劍 및 劍鞘附屬)

분     류 유물 / 생활공예/ 금속공예/ 청동용구
수량/면적 일괄
지 정 일 1971.12.21
소 재 지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

시     대철기시대
소 유 자삼성문화재단
관 리 자

호암미술관

일반설명

대구시 북부 비산동에 있는 초기철기시대 무덤유적에서 나온 유물이다.

동검은 전형적인 세형동검으로 칼 끝이 예리하고 칼몸 끝까지 등날이 세워져 있다. 모양은 가운데 마디가 있고 칼자루 끝에는 물새 두 마리가 머리를 돌리고 서로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장식은 이미 평양부근에서 출토된 적이 있는 것으로 북방지역 청동기 문화와의 연관성을 나타내고 있다. 검은 색조의 청동검은 칼자루의 표면은 광택이 있으며 그 밖의 다른 세부 조각이나 장식은 없다.

이외에 부속품으로 칼자루 장신구, 칼집부속구, 칼끝 장신구 등과 기타 파편들이 있다. 칼자루 장신구는 평면이 은행알처럼 생긴 타원형 장신구로서 둘레에는 평행선무늬가 연속해서 새겨져 있다.

칼집부속구는 청동으로 된 타원형 고리로, 목재 칼집을 보강하고 장식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칼끝 장신구는 길이 3.75㎝, 밑변길이 2.9㎝로 나무로 된 칼집의 끝에 장식한 것이다. 그 외에 칼자루로 생각되는 파편 1점이 있다.

이 동검은 칼과 손잡이 칼끝장식이 별개로 만들어진 점으로 보아 제작자가 한반도 남쪽 지방으로 추정된다.


전문설명


가. 동검(銅劍)

(1) 동병검(동병검) 전체 길이 33.2cm, 검신(劍身) 너비 3.1cm, 경부(莖部) 길이 1.8cm.

전형적인 후기형식(後期形式)의 동검(銅劍)이며 제작이 우수하다. 봉부(鋒部)는 길고 인폭(刃幅)이 좁으며 마디(절대부(節帶部))의 괄약(括約)은 퇴보되었다. 직선적인 외형을 갖게 되고 또 날카롭게 연마(硏磨)하였으므로 매우 예리한 인상을 준다. 등날은 기부(基部)에 이르기까지 세웠다. 이 동검(銅劍)은 아래서 말한 바와 같이 청동체의 병부(柄部)를 비롯하여 검초부속금구일식(劍초附屬金具一式)을 완비하였다. 동검(銅劍)은 자루와 칼집을 갖추어서야 제 구실을 하게 되는데 대개의 경우 이러한 부속품은 목질(木質)로 구성하였기 때문에 부식되어 출토시에는 검신(劍身)만이 단독으로 발견되는 일이 많다. 이 동검(銅劍)처럼 부속구 일식(一式)을 완전히 보존하고 있는 예는 극히 희귀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 동검병부(銅劍柄部) 전체 길이 12.5cm, 두부(頭部) 장경(長徑) 7.5cm.

한국(韓國)의 세형동검(細形銅劍)은 검신(劍身)과 병부(炳部)를 별도로 만들어 그것을 조립해서 사용한다. 대개가 목질로 만든 검병(劍柄)을 사용하였으나 때로는 청동제품도 발견되며 현재까지 약 10개의 출토 예가 알려져 있다. 이것은 청동제 검병(劍柄) 중에서도 소위 조형(鳥形) 안테나식(式)의 병두(柄頭)를 갖춘 보기 드문 유물(遺物)이다. 2마리의 오리가 머리를 돌리고 서로 대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오리의 동체에 해당되는 측면에 2개의 3각형 투공(透孔)과 중앙에 1개의 작은 구멍이 있다. 이와 비슷한 병두(柄頭)는 전에 평양 부근에서 출토된 일이 있었다. 검병(劍柄)의 파부(把部)는 중앙에 마디가 있는 장고동형(長鼓胴形)인데 현재 파손되어 2분되었다. 검심(劍심)에 연결되는 부분은 확대되어 은행알형(形)을 이루고 있다. 세부에 대하여서는 이렇다 할 조각이나 장식을 볼 수 없으며 윤택이 있는 표면(表面)을 이루고 있다.

(3) 검심장구(劍심裝具) 장경 7.6cm, 단경 5.2cm

평면이 은행알처럼 생긴 타원형 환형품(環形品)이며 주위 바깥 면에는 한국(韓國) 동검문화(銅劍文化)에 특유한 평행세선문(平行細線文)을 빈틈없이 연속해 시문(施文)하였다.

(4) 칼집부속구(附屬具) 3개(個)

1) 장경(長徑) 7cm, 단경(短徑) 3cm, 높이 2.72cm

2) 장경(長徑) 6cm, 단경(短徑) 3cm

3) 장경(長徑) 5.15cm, 단경(短徑) 2.1cm

목제(木製)의 칼집을 보강하고 또한 장식하기 위하여 사용한 것으로 생각되는 청동제의 타원형환이다.

그 중 1)은 가장 대형(大形)으로서 측면 중앙에 돌아가는 돌기대(突起帶)를 사이에 두고 상하부(上下部)의 환체(環體)를 넓게 만든 것이 좀 구조가 다르다. 이 상하부에는 각각 2줄의 음각선이 있으며 한편 환내면(環內面)에도 그러한 음각선이 새겨져 있다. 현재 환체(環體)의 약 4분의 1 정도가 결실(缺失)되고 또 그 외에도 파손된 부분이 많다.

2)는 구조가 간단하며 측면에 4줄의 음각선을 만들었을 뿐이다. 일부분이 절단되었으나 실형(實形)으로 복원할 수 있다.

3)은 직경이 제일 작게 만들어졌으므로 검미(劍尾)에 가까운 편에 감장(嵌裝)된 것으로 짐작된다. 측면에 1줄의 돌대가 있고 그로부터 하부(下部)는 환체(環體)가 약간 좁아진다.

(5) 검미장구(劍尾裝具) 길이 3.75cm, 저변(底邊) 길이 2.9cm, 측면 높이 0.8cm.

상기한 3개의 청동환(靑銅環)과 일식(一式)을 이루고 목제(木製) 칼집의 미단(尾端)에 감장(嵌裝)한 금구(金具)이다. 2등변 3각형의 앞뒷면에는 저변(底邊)에 평행하여 3줄의 요선문(凹線文)이 있으며 측면에도 같은 선문(線文)을 2줄 올리고 있다.

(6) 기타(其他) 파편(破片)그 밖에 검심(劍심)으로 생각되는 파편(破片) 1점이 있으나 전자의 검심과는 짝이 맞지 아니한다. 주위에는 평행(平行) 세선문(細線文) 대신 세공(細孔)을 연속적으로 투각(透刻) 장식하였다.

나. 동모(銅모) 전체 길이 40.05cm, 최대(最大) 너비 4.2cm, 부(釜) 길이 12.3cm

(1) 보존상태는 양호하며 거의 손상을 입지 않았다. 한국에서 출토되는 동모(銅모)의 계보는 그 조형을 중국(中國)의 유물(遺物)에서 구할 수 있겠으나 이것은 이미 형태가 완전히 한국화(韓國化)된 동모(銅모)의 형식에 속한다. 그 특징은 원통형의 공부(공部)(소케트) 하단(下端)에 폭이 넓은 돌대(突帶)를 돌리고 거기에 붙여서 한쪽에 반원형의 환이(環耳)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공부(공部)에서 모부(모部)로 연장되는 등대는 좌우에서 연마(硏磨)를 가하였으므로 중앙에 모가 서 있다. 이것은 모신(모身)에 날을 세울 때 함께 연마(硏磨)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2) 한국(韓國)에서 발견된 동모(銅모) 중에서는 최대급(最大級)에 속하는 전체 길이 8.7cm, 최대 너비 501cm, 공부(공部) 길이




동검검경및동모부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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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국보  제137-2호

명     칭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투겁창 및 꺾창 (大邱 飛山洞 靑銅器一括-鉾 및 戈)

분     류 유물 / 생활공예/ 금속공예/ 청동용구
수량/면적 일괄
지 정 일 1971.12.21
소 재 지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
시     대철기시대
소 유 자삼성문화재단
관 리 자리움미술관

일반설명

대구시 북부 비산동에 소재한 초기철기시대 무덤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투겁창(동모)은 창의 일종으로 끝에 나무자루를 끼우고 창 끝에 달려있는 반원형의 고리에 고정시켜 사용하도록 되어있다. 3점이 출토되었는데 하나는 길이 67.1㎝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투겁창 중에서 가장 큰 편에 속한다.

길이 57.2㎝의 투겁창은 몸통이 넓어 광형투겁창(광형동모)이라 하고 옆에 달려있는 고리에 구멍이 뚫려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실용품이라기 보다는 의기용(儀器用)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하나는 40.0㎝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일반적으로 출토되는 투겁창은 중국의 것을 본 뜬 것이 많지만 이것은 완전히 한국화된 형태인 점이 주목된다.




동검검경및동모부속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