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국보 제7호 |
명 칭 |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天安 奉先弘慶寺 碣記碑) |
분 류 |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
수량/면적 | 1기 |
지 정 일 | 1962.12.20 |
소 재 지 | 충남 천안시 성환읍 대홍리 320 |
시 대 | 고려시대 |
소 유 자 | 국유 |
관 리 자 | 천안시 |
일반설명
갈비는 일반적인 석비보다 규모가 작은 것을 말하는데, 대개는 머릿돌이나 지붕돌을 따로 얹지 않고 비몸의 끝부분을 둥글게 처리하는 것이 보통이다.하지만 이 비는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을 모두 갖추고 있어 석비의 형식과 다르지 않다. 거북모습의 받침돌은 양식상의 변화로 머리가 용의 머리로 바뀌었고, 물고기의 지느러미같은 날개를 머리 양쪽에 새겨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비몸돌 앞면 윗쪽에는 ‘봉선홍경사갈기’라는 비의 제목이 가로로 새겨져 있다. 머릿돌에는 구름에 휩싸인 용을 새겼는데 그 모양이 자못 도식적이다. 이 비는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절을 세운 지 5년이 지난 고려 현종 17년(1026)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문은 ‘해동공자’로 불리던 고려시대 최고의 유학자 최충이 짓고, 백현례가 글씨를 썼다. 봉선홍경사지(奉先弘慶寺址)가 있었던 곳은 인가(人家)도 드물었으며 잡초가 우거져 가끔 도적이 출몰하여 행인이 곤란을 당하였다고 한다. 이에 고려(高麗) 현종(顯宗)은 창사(創寺)를 명(命)하고 병부상서(兵部尙書) 강민첨(姜民瞻)을 감독으로 동왕(同王) 12년(1021)에 200여칸을 완공하였다. 현종의 부왕(父王) 안종(安宗)이 법화경(法華經)의 묘설(妙說)을 보고 깊이 느끼어 창사하려다 서거(逝去)하여 그 유지(遺志)를 이어 완성한 것이므로 사명(寺名)에 봉선(奉先)을 앞에 놓았다. 절의 서쪽에 객관(客館)을 건립하여 행인(行人)의 편리를 도모하였다 한다. 비신에는 봉선홍경사갈기(奉先弘慶寺碣記)라 횡서(橫書)하였으며 비문은 해서(楷書)로 각자(刻字)하였는데 최충(崔沖)이 찬(撰)하였고 백현례(白玄禮)의 서(書)로 되어 있다. 비를 세운 연대는 비문 끝에 「성상어유지십팔재대평기역지제육년하사월 일근기(聖上御유之十八載大平紀曆之第六年夏四月 日謹記)」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는데, 절을 세운 지 5년 뒤의 일이다. 비신(碑身)을 받는 귀부(龜跌)의 어룡(魚龍)이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보호각)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비신) 좌측에서본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귀부)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부분)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귀부)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비문)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측면보살화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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