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보물

보물 (제2160호)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

오늘의 쉼터 2023. 4. 15. 17:08

 

 

종    목 보물 (제2160호) 
명    칭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 (慶州 芬皇寺 金銅藥師如來立像)
분    류 유물 / 불교조각 / 금속조 / 불상
수량/면적 1구
지 정 일 2022.02.22
소 재 지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로 94-11 (구황동, 분황사)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분황사
관 리 자 분황사
문화재설명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은 조선 후기의 유일하고 규모가 가장 큰 금동불 입상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1998년 분황사 보광전 해체 수리과정 중 중도리 바닥에서 1616년「분황사상량기(芬皇寺上樑記)」및 종도리에서 1680년「부동명활성하분황사중창문(府東明活城下分皇寺重創文)」묵서(墨書)가 확인되어 이 약사여래입상이 1609년 5,360근의 동을 모아 제작한 대형 불상임이 확인되었다. 또한 조성 이후에도 김수홍(金壽弘, 1626∼1690)의『퇴우당집(退憂堂集)』, 임필대(任必大, 1709∼1773)의 『유동도록(遊東都錄)』등 조선 후기 문인들의 문집에 언급되어 있어 전승 경위 또한 명확하다. 분황사는 신라시대부터 자장율사(慈藏律師), 원효대사(元曉大師) 등 여러 고승들의 수행처이자 중요한 가람터로 인정되어 온 한국의 대표적 사찰이다. 원래 이곳에 봉안되었던 금동약사불은 정유재란으로 인해 소실되었으나, 신라시대부터 이어져온 약사도량으로서 분황사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전란 후 얼마 되지 않아 지금처럼 장대한 규모로 복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이 주목되는 이유는 17세기 초반의 동조(銅造) 불상이라는 점, 규모가 354cm이르는 현존 최대 금동약사불이라는 점, 앞 시기 규범에 따라 입상으로 조성된 정통성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대형 불상이 대부분 소조(塑造, 진흙)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러한 대규모 금동불상은 매우 희귀한 사례에 속한다.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은 규모가 커 우람한 형태미를 보이고 있지만, 이와 달리 둥글고 통통한 얼굴에 어깨가 왜소해 전반적으로 동안(童顔)의 형태미를 보여준다. 특히 아이처럼 앳돼 보이는 이목구비는 16세기 불상 양식이, 가슴과 복부가 길쭉한 비례감과 세부 주름 등 신체 표현은 17세기 양식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신ㆍ구 양식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616년과 1680년에 작성된 두 건의 상량문을 통해 1609년에 동(銅)으로 불상을 조성했다는 조성 경위와 불상의 존명까지 분명히 밝히고 있어 이 시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보물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
보물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
보물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
보물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