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557호) 인천 팔미도 등대

오늘의 쉼터 2023. 4. 7. 20:42

인천 팔미도 등대

종 목
사적 (제557호)
명 칭
인천 팔미도 등대 (仁川 八尾島燈臺)
분 류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 근대교통·통신시설 / 해운
수량/면적
25.8㎡(등대 및 돌담)
지 정 일
2020.09.15
소 재 지
인천광역시 중구 팔미로 28 (무의동)
시 대
1903년
소 유 자
해*** 
관 리 자
해*** 
문화재설명
인천 팔미도 등대는 한반도에 처음으로 들어선 근대식 등대로, 1902년에 착공해서 1903년에 준공되었다. 최초 점등일은 1903년 6월 1일이다. 등대의 총 높이는 약 8m이며, 형태는 지름 약 4.67m의 원통형이다.[2] 처음 건설했을 때의 형태가 아직도 잘 남아 있는 편이다.

다만, 등대를 세우기는 대한제국 정부가 세운 것이긴 하나, 실제 건설에는 일본제국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 등대가 점등하고 1년 뒤에 발발한 러일전쟁때 일제 측에서 꽤나 요긴하게 써먹었다고 한다.

등대가 세워지고 47년이 지난 1950년,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팔미도 등대가 다시 한 번 등장하게 된다. 6.25 전쟁 중 시행된 인천상륙작전에서, 팔미도는 작전 수행 상 상륙 부대의 진로에 위치한 주요 요충지였고 이로 인해 섬과 등대는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거점이었다. 또한 자정을 넘은 심야에 상륙 부대가 안전하게 상륙하기 위해서는 등대불의 인도가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북한군의 수중에 떨어져 있던 이 등대를 UN군이 탈환하여 수복하였으며, 등대의 불을 밝히는 것으로 인천상륙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6.25 전쟁 이후로도 근 50년간 인천항 길목의 등대로 계속 사용되어 왔으나 100년에 달하는 시간의 흐름을 결국 이기지 못하고 등대 건물이 노후화되었으며 이로 인해 등대 기능 수행에 무리가 오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신등대를 건설하여 2003년에 완공하였고 등대 기능은 신등대로 모두 이관되었으며, 구등대 건물과 그 부속시설들은 잘 보존되고 있다.

인천 팔미도 등대는 2002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었다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라는 대한민국 근현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와 6.25 전쟁의 전세를 뒤바꾸는데 기여한 건축물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 받아 2020년 9월 15일 사적 제557호로 승격지정되었다

 

인천 팔미도 등대
인천 팔미도 등대

인천 팔미도 등대

인천 팔미도 등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