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충북문화재자료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94호 영동 덕후재 일원

오늘의 쉼터 2019. 8. 31. 11:30

 

종    목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94호
명    칭 영동 덕후재 일원 (永同 德厚齋 一圓)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수량/면적 1원 / 4,529㎡(지정구역 1,658㎡, 보호구역 2,871㎡)
지 정 일 2018.11.30
소 재 지 충청북도 영동군 봉곡1길 205-71 (양산면, 재실)
시    대 조선후기(1769년 초축, 1806년 중건)
소 유 자 함양여씨 울산공파 종중
관 리 자 함양여씨 울산공파 종중 
일반설명

양산면(陽山面) 봉곡리(鳳谷里)는 본래 양산현(陽山縣) 지역으로 봉우재 밑이 되므로 봉골, 봉곡이라고 함. 옥천군(沃川郡) 양내면(陽內面)에 속하였다가 1906년 영동군으로 편입되었음.

여중온(呂仲溫)은 함양여씨(咸陽呂氏) 15세로 사후 울산군수(蔚山郡守)로 증직되었으며 아들 문망(文望)대에 크게 자손이 번성하여 옥천파(沃川派)시조가 됨.

덕후재는 상량문과 중수기 기록에 의하면 입향조 중온의 재실로 1769년 초축되었고 1803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06년에 중건하였다. 묘역은 시조 중온의 묘소를 중심으로 일렬로 배되어 있으며 비석, 동자석, 망부석 등 조선 초기 석물양식이 잘 남아있다.

금강변과 인접한 마을 안쪽에 위치한 재실로 입구에 비보숲이 있고 숲을 지나 봉토를 끼고 약 100여미터 올라가면 좌측에 묘역이 있고 우측에 재실이 있다.

묘역은 시조 중온의 묘소를 중심으로 일렬로 배치되어 있음. 중온의 묘소는 내외 묘소가 좌우가 아닌 상하분 형태임. 묘소 전면에 묘비와 상석, 향노석이 있고, 아들 문망의 묘소에는 묘비와 상석, 향노석과 석인상이 있음. 하단으로는 후손의 묘소가 차례대로 배치되어 있음.

재실권역은 묘역을 지나 솟을대문 통해 들어가는 구조로 정면에 ‘ㄱ’자형의 덕후재가 있고 좌측에 창고가 배치되어 있는 구조임. 주 건물인 덕후재는 정면 5.5칸, 측면 3.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임.

1945년경 종중에서 살림집으로 사용하면서 종중 회장인 여운양씨와 둘째 아들인 여운론씨가 1945년 무렵부터 1989년 까지 기거 했으며, 그 이후 세입자가 일정기간 거주하였음. 현재 덕후재에는 재실과, 대문채, 뒤주가 남아 있다. 재실 남・서측에 자리하고 있는 뒤주는 원형이 잘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나 대문채는 1985년 화재로 지붕부분이 손실되어 수리하였는데 초가에서 슬레이트로 변형됨.

재실 또한 여러 명이 거주하며 지내왔던 관계로 거주자의 편의 및 여러 번의 수리를 거치며 원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일부분은 변형되었으나, 2015년 영동군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후 2017년 문화재 원형 복원을 위해 관계전문가 자문과 솟을대문 지붕형태를 참고로 하여 전통토기와로 지붕을 교체하고, 배면의 살강, 굴뚝, 눈썹지붕 등을 철저한 고증을 거쳐 복원하였다.

 

영동 덕후재 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