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하늘의 道]

제7장 반정 전후 6

오늘의 쉼터 2016. 7. 30. 21:49

제7장 반정 전후 6



동녘하늘에 먼동이 트려 하고 있었다.
 
  가을의 이른 새벽이었으므로 떠도는 안개는 살얼음처럼 차가웠다.

큰 부채를 손에 쥔 박원종은 어깨를 부르르 떨며 진저리를 쳤다.

차가운 날씨 탓도 있었지만 그는 심장이 곧 터질 것만 같았다.

  옅은 안개 속에서 반정군은 박원종의 손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가 쥔 부채가 허공에 원을 그리면 반정군은 대궐로 진군하기로 약속돼 있었던 것이다.

박원종은 날이 더 밝아지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유자광과 박영문이 지휘하는 군졸들도 박원종의 진군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궁궐을 지키는 내금위의 군사와 대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궁궐을 지키던 대부분의 군졸들은 담을 타고 넘어와 투항하여 반정군에 가담한 상태였다.

그러니 궁궐은 이미 비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박원종은 반정군에게 진군의 명을 내리지 않았다.

어둠이 물러가고 날빛이 더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누가 누구인지 얼굴을 분간할 수 있을 만큼 날이 밝아져야 궁궐 침전을 뒤져

연산주와 장녹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반정의 군졸들은 사냥감을 찾은 사냥개처럼 질주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유자광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말의 고삐를 낚아채면서 휘하의 반정군들에게

같은 지시를 몇 번이나 내렸다.

  "반항하는 자는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처단하라.

다만 벼슬이 높은 자를 생포한 장졸에게는 상을 내리리라. 알겠느냐."

  "네. 나으리."

  박원종의 지시도 위엄을 갖추어 전했다.

  "상궁이나 궁녀를 겁탈한 자는 즉시 참형에 처하리라.

죄 없는 자들을 욕보이지도 말고 괴롭히지도 말라."

  "네. 나으리."

  박영문도 군졸들에게 추상같은 명을 내렸다.

  "군기시에서 너희들에게 지급된 창이나 활을 소중하게 다루어라.

실수하여 창이나 활을 부러뜨린 자는 용서하지 않으리라."

  남산 쪽 허공을 쳐다보고 있던 박원종은 이를 악물었다.

드디어 동쪽 하늘에서 피처럼 붉은 기운이 번지고 있었다.

옅은 안개 때문에 놀의 빛이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새 하늘이 분명 열리고 있었다.

마침내 박원종은 부채를 번쩍 들어 크게 원을 그리며 소리쳤다.

  "진군하라. 새 세상이 열리고 있느니라.

그대들이 보고 있듯이 어둠이 물러가고 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새 임금을 추대하여 다시 성대를 누릴 것이다.

진군하라. 우리의 진군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느니라."

  박원종의 한 마디에 새벽의 한기 속에서 떨고 있던 군졸들의 사기는 충천했다.

군졸들은 차가운 새벽의 한기를 털어버리듯 함성을 지르며 궁궐을 향해 거칠 것 없이 돌진했다.

  와아, 와아!

  박원종은 춤을 추듯 부채를 휘둘렀다.

그때였다.

궁궐 쪽에서 두 사람이 달려오고 있었다.

입직해 있던 도총관 민효증(閔孝曾)과 병조참지 유경(柳涇)이었다.

  "도총관 민효증이오."

  "병조참지 유경이오."

  "천천히 걸어오시오."

  신윤무가 소리 지르자

민효증과 유경은 앞으로 기우뚱 넘어지려다 가까스로 걸음을 멈추었다.

박원종이 부채를 내리는 순간 진군하던 군졸들이 잠시 멈칫거렸다.

  "도총관 대감이시다. 정중하게 맞이하라."

  도총관이라 함은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의 우두머리로 정 2품의 품계를 가진 높은 벼슬아치였다.

또한 오위도총부란 전군을 오위로 나눈바 그 오위를 총괄하던 관청으로 병조에서 독립된 기관을 말했다. 도총관이 투항해 온 것은 실제적인 군권이 반정군으로 넘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민 대감, 잘 오셨소이다."

  "입직해 있던 탓에 좀 더 일찍 평성군 대감을 돕지 못했소이다."

  "이분들을 광화문 진영에 잘 모시어라."

  반정군은 그들을 진영에 남겨두고 다시 진군했다.

도총관 민효증이 진영에 남은 성희안의 눈치를 보며 작은 소리로 유경에게 말했다.

  "자네는 대궐을 어떻게 빠져나왔는가."

  "반정군과 이미 내통한 환관이 알려주어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대감께서는."

  "나도 환관이 귀띔을 해주어 살길을 찾았네. 한 걸음만 늦었더라도 우리는 역적으로 몰릴 뻔했네."

  "군권을 쥐고 있는 도총관 대감께서 반정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단 말씀입니까."

  "군기시첨정 박영문과 군자시부정 신윤무가 오위도총부의 팔다리를 이미 다 잘라버렸으니

나에게는 거짓 보고만 올라온 셈이지.

평성군이 반정을 하는 동안 나는 허수아비가 된 것이네. 허허허."

  그래도 민효증은 자신의 목숨이라도 건진 것이 다행했던지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에 유경도 목을 쑥 내밀며 말했다.

  "명색이 글을 한 선비가 담을 넘을 체면도 아니고 하여 개구멍만한 수구(水口)로 빠져나왔습니다."

  "에끼 이 사람아, 개구멍으로 빠져나오는 것이나 담을 넘는 것이나 무엇이 다를 것인가.

선비 체면을 따지기보다는 이 세상에 목숨보다 중한 것이 어디 있겠나.

목숨이 있고서야 부귀영화도 있는 것이지."

  "대감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사옵니다.

우리가 주상전하 밑에서 일한 것은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도 같습니다."

  "다 지나간 일, 이제 살았으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세."

  유순정이 전령을 데리고 진영으로 들어오자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성희안은 달려왔는지 숨을 몰아쉬고 있는 전령에게 물었다.

  "폐주는 어디에 있느냐."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옵니다.

허나 폐주가 도망치지 못하게 모든 궐문의 방비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 하옵니다."

  "장녹수, 그년도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성희안은 유순정과 자순대비의 교지를 받으러 갈 채비를 하였다.

조금 전 대비전에서 교지를 내릴 준비가 돼 있다고 전해 왔기 때문이었다.

  한편, 유자광은 내통한 환관을 대동하여 침전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대비를 위한 연회 이후 연산주와 장녹수가 들었다는 방을 급습했으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유자광의 실망은 컸다. 공을 크게 세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싶었으나 허사로 돌아간 것이었다.

유자광이 장검을 빼어들고 환관을 닥달했다.

  "나를 속이려드는 것인가.

그러고도 살아남을 줄 아는가. 폐주를 살리기 위해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무령군 대감,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저와 인연을 끊겠다는 것이옵니까."

  "신신부탁을 했건만 살쾡이 같은 폐주를 놓치고 여우 같은 장녹수 년을 놓치니

어느 누군들 실망하지 않겠는가. 폐주는 이미 대궐을 빠져나가 도망친 것이 아닌가."

  "대감, 저와 질긴 인연을 이것으로 끝내려 하옵니까.

폐주는 멀리 도망가지 못했을 것이니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음."

  유자광은 환관이 말한 질긴 인연이란 말에 마음이 약해져 칼을 거두어 들였다.

연산주의 눈에 들지 못해 높은 품계를 받지 못한 환관이었지만 유자광이 벼슬길에 오른

세조 때부터 그가 주는 금품을 몰래 받고는 대궐의 자잘한 얘기를 전해주던 정보통이었던 것이다.

  환관의 말대로 연산주는 멀리 도망치지 못하고 아직 궁 안에 있었다.

연산주는 침전에서 나와 근정전의 차비문(差備門) 안에 앉아 몹시 놀란 채 허둥대고 있었다.

  "입직 승지는 어서 들라."

  "전하, 승지 이우이옵니다."

  "후궁과 궁녀들이 울부짖으며 몰려다니고 있구나. 무슨 변고인가."

  "신은 아직 까닭을 모르겠사옵니다."

  "태평성대에 어찌 변고가 있으랴."

  "전하, 큰일은 아닌 듯하옵니다."

  "승지의 말을 듣고 보니 안심이 되는구나.

아마 기녀의 무리들을 관리하는 흥청 본부(本夫)들이 도둑질을 하는지 모른다.

어서 정승과 금부당상을 불러 처치하라. 도승지는 어디에 있느냐."

  "아직 입직하지 않은 것 같사옵니다."

  "삼경이 지나 날이 밝아 오고 있는데도 입궐하지 않았단 말이냐."

  "신은 아직 도승지를 보지 못했사옵니다."

  "즉시 도승지를 입궐토록 하라. 요절을 내고 말리라."

  그러나 도승지 강혼은 반정군의 광화문 진영에서 서기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우는 그가 광화문 진영에 가담한 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연산주가 다시 이우에게 명을 내렸다.

  "승지는 열쇠를 가지고 궐문을 순행해 살피도록 하라."

  이우는 내금위 군관을 시켜 궐문의 현황을 살피려고 하였으나 그만 두고 말았다.

몇 걸음 돌아다녀 보았으나 궐문을 수비하는 내금위 군사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 도망치고 궐문 안팎에는 쥐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고 있었다.

발길을 돌려 차비문으로 가려던 이우는 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대궐 밖 반정의 군졸들이 지르는 함성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차비문 안으로 들어가려던 승지 윤장(尹璋)과 조계형(曺啓衡)이 이우의 소매를 잡고 물었다.

  "이보게, 저 함성 소리가 무엇인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소.

전하를 지키는 내금위 군사는 아무도 보이지 않으니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나는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겠소. 이 소매를 놓으시오."

  이우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면서 자신을 찾는 연산주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리자

"불쌍한 우리 전하를 잘 부탁하오이다"라는 말을 남긴 뒤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쳐 버렸다.

  연산주는 이우를 불러도 대답이 없으므로 차비문 밖까지 나와 승지 윤장과 조계형의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이우는 어디로 갔는가. 과인이 궐문을 돌고 오라고 했거늘 어디로 갔는가."

  "전하, 이우는 방금 저 궐문 밖으로 달려갔사옵니다."

  "뭣이라고. 과인이 여기 있거늘 궐문 밖으로 달려갔다는 말인가.

오호, 측은하도다. 이우가 언제부터 바보가 됐단 말인가."

  연산주는 버선을 신지 않은 맨발인 채였고, 야장의(夜長衣; 잠옷)의 고름이 풀어져

윤장과 조계상은 민망하여 고개를 들지 못했다.

더구나 연산주는 감기에 걸렸음인지 인중에 비수(鼻水; 콧물)가 조금 비쳐 보였다.

  "승지는 과인의 활과 화살을 가져오라."

  윤장이 뒤로 물러서면서 말했다.

  "전하, 그보다는 먼저 이우를 불러 오겠나이다. 잠시만 기다리옵소서."

  "그래, 어서 들라 해라."

  그러자 이번에는 조계상이 게걸음을 하면서 말했다.

  "신도 윤장과 함께 이우를 불러오겠나이다."

  "내 활과 화살을 가져오라는데도 어디를 가는 것이냐."

  연산주가 조계상의 소매를 끌려고 하였으나 이미 조계상은 저만큼 궐문 앞에 물러가 있었다.

연산주는 두 손을 늘어뜨리며 기가 막힌 듯 고개를 허공으로 쳐들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정색을 하며 중얼거렸다.

  "나도 승지들을 따라 도망쳐 볼거나. 히히히.

허나 이 정전은 누가 지킬꼬. 나마저 도망친다면 이 나라는 누가 지킬꼬. 히히히."

  연산주는 다시 미친 듯이 웃어젖히며 옷고름이 풀어헤쳐진 채 창덕궁으로 달려갔다.

연산주는 아직도 내금위 군사가 지키고 있는 창덕궁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인 줄 알고

그곳으로 숨었다.

그래도 불안하여 왕비 신씨에게 말했다.

  "부인, 차라리 역모를 일으킨 신하들에게 빌어봅시다."

  "전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빌어본들 무엇이 도움이 되겠사옵니까.

순하게 받는 것만 못할 것이옵니다."

  "부인, 역모를 순하게 받으란 말입니까."

  "전일에 여러 번 간해도 끝내 고치지 않다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자기 스스로 저질른 사람은 비록 죽어도 마땅하겠지만 불쌍한 두 아이는 어이 할 것입니까."

  "말한들 무엇 하리오. 부인, 어서 대궐을 빠져나가시오."

  왕비 신씨가 피해서 숨을 수 있는 곳은 평소에 몰래 가서 점을 보던 청파촌 무당 집이었는데,

이미 세자와 대군과 유모는 모두 무당 집에 가 있었다.

왕비는 서둘러 도망치느라 비단 신이 벗겨지곤 했다.

그래서 비단 수건을 찢어 신을 동여매고 무당 집으로 달렸다.

  그런데 왕비 신씨는 무당 집에 도착하여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또 보고 말았다.

대군이 상에 오른 밥을 보고는 "어찌 새끼 꿩을 올리지 않느냐"고

유모에게 투정을 부리자 유모가 "내일은 이런 밥만 얻어먹어도 다행일 것입니다." 하고

울면서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반정군은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경복궁 근정전 뜰로 들어섰다.

그러나 박원종은 누구도 근정전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용치 않았다.

회의는 극문(戟門) 안에서만 했다. 회의 결과 먼저 신하들이 경복문 밖으로 나아가

자순대비의 명을 받아오게 하고, 그런 뒤 유순정과 정미수로 하여금 대가(大駕)를 보내

진성대군을 근정전으로 맞아오게 하였다.

그리고 날이 저물기 전에 진성대군을 새 임금으로 즉위케 하여 교서를 펴고

은사(恩赦)를 내리기로 했다.

  이때 유자광은 연산주를 근정전으로 불러 죄를 묻자고 주장했다.

  "곽광(霍光)의 창읍왕(昌邑王)을 폐위한 고사를 따라서 전왕(前王; 연산주)을

전 안에 불러놓고 대비께 폐위한 까닭을 알리는 것이 어떻겠소."

  유자광의 속셈은 대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연산주를 백관 앞에서 능멸과 모욕을 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산주 아래서 높은 벼슬을 한 유순 등이 반대했다.

아무리 폐주라 하더라도 모욕을 주고 능멸하는 자리는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옛날부터 임금을 폐하고 새로 세울 적에 그 죄를 헤아린 것은

창읍왕(한무제의 아들)을 폐할 때뿐이었습니다."

  결국 승지 한순(韓洵)과 환관 서경생(徐敬生)을 창덕궁으로 보내

폐주에게 국새를 내놓고 근정전을 피해가도록 결론을 내렸다.

김수동은 이들을 앞세우고 뒤따랐다.

창덕궁에 도착하여 한순이 떨면서 말했다.

  "전하, 대비마마의 교지가 내렸사옵니다."

  "무엇이라 하시더냐."

  "어두운 임금을 폐하고 밝은 임금을 세우는 것은 고금에 통하는 의리이니

이에 여러 사람의 소원에 따라 진성대군을 왕위에 오르게 할 것이며

지금의 임금을 폐하여 연산군으로 삼는다는 교지이옵니다."

  "나를 군(君)으로 폐한다는 말이냐."

  "그렇사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더냐."

  "임금 된 도리를 잃어 백성이 도탄에 빠졌다는 것이옵니다."

  "그 말도 교지에 있는 말이냐."

  "그렇사옵니다."

  연산주는 자신의 날이 저물었음을 알고 조금도 반항하지 않고 순응했다.

  "내가 내 죄를 알겠다."

  이에 김수동은 비통하게 말했다.

  "노신이 죽지 않고 있다가 이 일을 보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전하께서는 너무 인심을 잃었으니 또한 어찌 하겠사옵니까.

부디 잘 보중(保重)하여 가시옵소서."

  김수동이 끝내 통곡하자 한순과 서생경도 '전하, 전하!' 하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연산주는 연민의 눈빛을 보이더니 상서원의 낭관을 불러 국새를 내어주고는

또 다시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히히히. 이상도 하구나. 어제까지는 너희들이 태평성대라고 하더니

오늘은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고 하는구나. 한 입으로 두 말하는 너희가 옳은 것이냐,

너희를 믿은 내가 틀린 것이냐.

영의정 유순, 무령군 유자광, 도승지 강혼, 한성판윤 구수영, 예조판서 김감, 이조판서 유순정,

사복시 첨정 홍경주, 군자시부정 신윤무, 군기시 첨정 박영문은 과인이 믿고 총애하였거늘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이냐. 히히히."

  국새가 돌아오자, 박원종, 성희안 등은 근정전 서쪽 뜰에 벌여 앉고,

유순정과 정미수, 강혼을 시켜 임금이 타는 대가(大駕)를 보내 진성대군을 맞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진성대군은 새 임금으로 추대되는 것이 두려워 평시서(平市署) 밖의 인가로 숨어버린 뒤였다. 평시서란 시전(市廛)의 저울이나 말, 되 등의 규격을 감시하는 등 상도의를 감독하는 관청인데,

바로 그 옆에 진성대군이 자주 놀러 다니는 인가가 있었던 것이다.

  유순정은 이문(里門) 밖에 꿇어앉아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두 번 세 번 왕위에 오르기를 간청했다.

  "대군 저하, 대비마마께서 교지를 내리셨고, 폐주가 내놓은 국새는 이제 새 임금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모든 신료들도 근정전 서쪽 뜰에서 대군 저하를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대군 저하, 어서 대가에 오르시어 근정전으로 나아가 조선왕조의 보위를 이으소서."

  마침내 진성대군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군복 차림으로 나와 대가에 올랐다.

그러자 평시서에 볼 일을 보러 왔던 상인들과 저잣거리의 백성들이 나와 만세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오시(午時)에 경복궁으로 든 진성대군이 면류관과 곤룡포를 갖추어 입고 근정전으로 나아가

즉위식을 올리니 이가 바로 중종이 되었다.

더불어 부부인 신씨는 왕비로 책봉되었다.

  천세(千歲), 천세!

  반열이 정해진 백관들이 기뻐 천세를 부르는 소리가 우레와 같이 근정전을 울렸다.

이에 성종의 둘째아들이자 연산군의 배다른 동생인 중종은 조선왕조 11대 왕으로서

백관의 하례를 받고 첫 번째 교지를 내렸다.

  그것은 죄인을 사면한다는 왕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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