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경기기념물

경기도기념물 제187호 유항한수묘역

오늘의 쉼터 2014. 10. 5. 22:36

 

종 목

경기도기념물  제187호 (파주시)

명 칭유항한수묘역(柳巷韓脩墓域)
분 류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봉토묘
수량/면적일원
지정(등록)일2003.04.21
소 재 지경기 파주시  진동면 서곡리 산87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청주한씨평간공봉찬회
관리자(관리단체)청주한씨평간공봉찬회
상 세 문 의경기도 파주시 문화관광과 031-940-4352
 
일반설명
 

고려시대 문신인 한수(韓脩)(1333~1384)의 묘역으로 한수의 자(字)는 맹운(孟雲), 호는 유항(柳巷),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밀직부사를 역임한 한공의(韓公義)의 아들이다. 1347년(충목왕 3) 어린나이로 과거에 합격하였고 충정왕때 정방의 필도지에 임명되었다. 1353년(공민왕 2) 전의주부로 기용되어 다시 필도지가 되고 이어 전리좌랑, 성균사예, 비서소감, 병부시랑, 국자감좨주 등을 두루 거쳤다.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이 안동으로 피난할 때 호종 하였으며 귀경 후 사복시판사로 있다가 좌대언으로 승진 하여다. 신돈(辛旽)이 1365년 정권을 장악하자 왕에게 “그가 바른 사람이 아니니 멀리할 것”을 아뢰었다가 예의판서로 폄직되고 얼마 뒤 관직에서 물러났다. 1371년 신돈(辛旽)이 주살되자 다시 부름을 받아 이부상서, 수문전학사로 발탁되고 곧 전선(銓選)을 관장하는 요직인 승선(承宣)에 임명 되었다. 계속해서 우왕대에 우문관대제학, 동지밀직, 상호군 등을 지냈다. 그러나 공민와 시해에 관련된 한안(韓安)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잠시 유배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1378년 배소에서 돌아와 상당군(上黨君)에 봉해지고 수충찬화공신(輸忠贊化功臣)이 되었다. 이어 청성군(淸城君)에 개봉되고 1383년 광정대부 판후덕부사에 이르렀으며 사후 영의정에 추증 되었다. 묘역은 종중 묘역으로 한수(韓脩)의 아버지인 한공의(韓公義)(1307~1365) 묘역과 형제인 한리(韓理)(1337~1417) 묘역이 인근에 함께 조성되어 있다. 묘역은 부인 안동권씨(安東權氏)와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봉분앞에 각각 묘비 1기씩을 조성하고 그 아래로 장명등을 각각 한기씩 설치 하였다. 장명등을 사이로 중앙에 상석과 향로석이 있으며 그 아래 양쪽으로 문인석 4기와 망주석 2기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상석 옆으로 근래에 새로 세운 묘비가 세워져 있을 뿐 다른 석물들은 원래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석물들의 형태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양식 을 따르고 있는데 장명등 1기는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유항 한수 묘역

 

유항 한수 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