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314. 야망(13)

오늘의 쉼터 2014. 8. 19. 23:34

314. 야망(13)

 

 

 

(1223) 야망-25

 

 박경택이 방을 나갔을 때는 그로부터 한시간쯤이 지난 후였다.

 

그러나 조철봉은 비서실에 연락해서 봉쇄를 풀지 않았다.

 

듣다가 만 녹음 테이프를 듣기 위해서였다.

 

조철봉은 담배를 자주 안피운다.

 

그렇다고 속이 상할 때나 머리가 아플 때 담배를 피우는 것도 아니다.

 

끊자고 작심을 하면 두달, 석달도 피우지 않다가 피운다.

 

그런데 오늘은 담배부터 꺼내 입에 물고나서 신중하게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11월 7일, 밤 11시20분.”

하고 박경택의 목소리가 녹음기에서 울렸다.

 

마치 동물의 왕국 해설자 같은 분위기였다.

“섹스가 끝나고 나서.”

경택이 친절하게 설명했을 때 곧 경윤의 목소리가 울렸다.

 

숨을 헐떡이고 있다.

“아유, 자기야. 그렇게 다리를 꺾어서 하니까 나 죽는줄 알았다.”

“그래? 나, 자기 좋으라고 비디오 보고 배워 놓은거야.”

김병문도 헐떡이며 말했다.

“어때? 끝내줬지?”

“응, 자기 귀여워.”

“내가 내일은 다른 체위로 해줄게.”

“또 있어?”

“그럼, 앞으로 서너가지 더 남았어.”

“나, 미쳐, 정말.”

경윤이 웃음띤 목소리로 말하더니 병문의 어딘가를 꼬집는 것 같았다.

 

병문의 비명소리와 웃음소리가 연달아 났다.

“자기야, 나, 그거, 어떻게 됐어?”

웃음을 그친 병문이 조심스럽게 묻자 경윤이 가볍게 대답했다.

“서울 올라가서 해줄게. 3천이면 돼?”

“응. 이번만 메우면 난.”

“그만.”

경윤이 웃음띤 목소리로 병문의 말을 막았다.

“그런 얘기 안해도 돼.”

“고마워, 자기야.”

그러고는 잠시 빈 테이프가 돌아가더니 경택이 해설했다.

“11월8일, 밤 12시10분.”

경택이 말을 이었다.

“섹스가 끝나고 나서 한시간 쯤 후에.”

“그 자식은 위선자야.”

경윤의 목소리가 불쑥 울렸으므로 조철봉은 눈을 번쩍 치켜떴다.

 

그러나 경윤의 목소리는 가볍다.

“한번도 진실을 말해 준 적이 없지. 온몸이 거짓으로 똘똘 뭉쳐 있는 놈이지.”

“그래?”

병문의 목소리도 밝다.

“그런데 왜 살아? 위자료 듬뿍 챙기고 갈라서지.”

“그럴 작정이야.”

“계획을 세워. 내가 자기 도와줄게.”

“알았어.”

그러더니 경윤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녹음기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TV에서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조철봉은 모르는 노래였다.

 

그때 병문이 말했다.

“무슨 노래 좋아해?”

“나? 으응.”

하고 경윤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곧 생기띤 목소리로 물었다.

“웨딩드레스 알아?”

“모르겠는데.”

“한상일의 웨딩드레스. 옛날 노랜데 우연히 듣고 좋아졌어, 들어봐.”

하더니 경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조철봉은 숨을 삼켰다.

 

자신의 18번인 것이다.

 

하긴 경윤이 그것을 알 리가 없다.

“당신의 웨딩드레스는 정말 아름다웠소.”

경윤이 거기까지 불렀을 때 조철봉도 다음을 따라불렀다.

“춤추는 웨딩드레스는 더욱 아름다웠소.”

그러고서 조철봉은 눈물을 쏟았다. 

 

 

 

 

 

(1224) 야망-26

 

 춘천식당은 아파트단지 입구의 상가에 있었는데 점심시간인데도 손님이 서너 테이블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옆집의 남원식당은 손님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조철봉이 보기에도 민망했다.

 

식당 손님만큼 정확하게, 그리고 눈에 띄게 상품 판단을 내리는 구매자는 없다.

 

맛이 없는데 누가 먹겠는가?

 

가끔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을 입거나 숙소에서 잠을 잘 수는 있어도 싫고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먹는 인간이 있겠는가?

 

그러나 조철봉은 춘천식당으로 들어가 앉았다.

 

벽에 붙은 메뉴는 한식에서 냉면류, 순대국과 해장국까지 다양했다.

 

옆집 남원식당이 추어탕 한 종류만 파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뭘 드릴까요?”

다가온 종업원이 물었을 때 조철봉의 입에서 하마터면 최성희란 이름이 튀어나올 뻔했다.

 

식당 안에는 종업원이 7, 8명 있었는데 열심히 그들을 곁눈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성희는 김병문의 와이프다.

 

김병문은 지금 제주도에서 열심히 서경윤과 밤농사를 짓고 있는 놈이고,

 

지금 빤히 조철봉을 쳐다보고 서 있는 여종업원은 40대였다.

 

유니폼은 입었지만 이름표를 붙이지 않아서 묻든지 어림잡아 찾아야 한다.

“아, 설렁탕. 특으로.”

우선 그렇게 주문을 하고 나서 조철봉은 다시 식당안을 둘러보았다.

 

없다.

 

모두 40대쯤의 중년여자 종업원이었고 20대는 안 보였다.

 

 박경택의 자료를 보면 최성희는 28세,

 

원향여고와 중문대 영문과 2년을 중퇴했으며 신장은 168정도, 고향은 대구였다.

 

그러나 사진은 없었으므로 이 고생이다.

 

손님이 없었기 때문인지 설렁탕은 금방 나왔다.

 

멀건 국물에 떠있는 고기가 종잇장 같아서 보자마자 입맛이 달아났으므로 조철봉이

 

찌푸린 얼굴로 수저를 들었을 때였다.

 

조철봉은 움직임을 멈췄다.

 

주방에서 검정 쓰레기 봉투를 들고 나온 여자가 20대였기 때문이다.

 

유니폼도 못 얻어입고 바지에 셔츠 위에다 비닐 치마만 둘렀다.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보조인 것이다.

 

여자는 무거워 보이는 쓰레기 뭉치를 힘들게 들고 옆문으로 나갔다.

 

최성희다.

 

설렁탕을 반도 먹지 않고 식당을 나온 조철봉의 마음은 굳어져 있었다.

 

그날 오후 4시가 되었을 때 성희는 전화를 받았다.

 

직업소개소의 홍실장이다.

“최성희씨, 거기 잘 안된다며?”

오늘따라 홍실장이 부드럽게 물었으므로 성희는 한숨부터 뱉었다.

 

50대의 홍실장은 과부라고 했다.

 

그래서 만나면 제가 고생한 이야기를 끝도 없이 늘어놓았지만

 

수수료는 딴데보다 많이 떼었다.

 

그러나 요령이 좋아서 일자리는 잘 찾아 주었다.

 

이곳 춘천식당도 홍실장한테서 네번째 일자리로 소개받은 곳이다.

“오늘도 매상이 30만원도 안 될것 같아요.”

성희가 낮게 말하자 홍실장이 놀라는 시늉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어마, 어마, 저걸 어째. 식당만 커가지고 종업원이 여덟이나 되는데,

 

이거 거기서도 월급 못 받고 나오는 거 아녀?”



지난번에 있었던 식당도 장사가 안되어서 석달 있다가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그곳에서 일한 한달반 분 월급도 아직 받지 못했다.

 

성희가 가늘게 숨만 뱉었을 때 홍실장의 목소리가 은근해졌다.

“이봐, 미스최. 오늘 저녁에 두시간만 알바 안할래? 좋은 손님이 있는데 말야.”

“싫어요.”

성희가 대번에 거절했지만 목소리는 약했다.

 

홍실장이 성희가 뻔히 애 엄마인 줄 알면서도 미스최라고 부를 때는 바로 이런 경우밖에 없다.

 

노래방 알바를 나가라는 경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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