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전남기념물

전라남도 기념물 제25호 영암향교 <해지>

오늘의 쉼터 2014. 5. 16. 19:44

 

종 목 전라남도 기념물  제25호 
명 칭 영암향교 (靈岩鄕校)
분 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향교
수량/면적 일원
지정(등록)일 1977.10.20~1985.02.25
소 재 지 전남 영암군 영야읍 교촌리
시 대 조선
소유자(소유단체) 영암군
관리자(관리단체) 영암군
상 세 문 의 전라남도 영암군 문화관광과 061-470-2225
 
일반설명
 
향교(鄕校)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원래 영암향교(靈岩鄕校)의 창설은 세종 2년(1420)에 조령과 향내 유림들의 협조로 이루어 졌다고 한다. 초창 당시의 향교 위치는 당시 영보역(永保驛)이 있던 역리의 괴성개였다고 전해지는데 이후 조선초기, 조선전기에 어떠한 상태로 어떻게 운영되었는지는 전혀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실정이다. 달량진사변 때 왜구의 침입으로 향교가 소실되고 더럽혀졌다고해서 선조 36년(1603)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이후 영암향교(靈岩鄕校)의 중수에 관하여는 상세히 전해지는 바가 없고 다만 영조 15년(1739) 문묘 중수, 고종 11년(1874) 향교 중수 사실만이 남아 있다. 일제하에는 향교가 보통학교의 임시교사로 사용되었고, 1918년 화재로 전소되어 1922년 명륜당을 중건하였으나 다시 한국전쟁(6·25) 당시 전소되었다. 1951년에 대성전, 1963년에 양사재, 1969년에 명륜당, 1971년 외삼문, 1976년에 내삼문, 1986년에 전사청 등을 각각 중건·중수하였다. 교육 공간과 제사 공간을 동서로 나란히 배치한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지었다.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은 소박하게 단장하였다. 그 외에 두 공간을 구분 짓는 내삼문이 있고 네모반듯한 연못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해지사유 : 문화재자료 제126호로 재지정됨에 따라 1985년2월25일 해지.

 

 

 

영암향교

 

영암향교

 

영암향교